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판단하는 주요한 계기에는 지난 5월 "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엔 한계가 있다"는 이낙연 총리의 발언도 있었다고 일본 정부 고위 소식통이 16일 주장했다.
"5월 토론회 발언 이후 日 정부 기류 변화" 주장 #중재위 설치와 수출규제 등 강경론으로 내달아 #한국 때리기 준비했다 이 총리 발언 명분 해석도
이 소식통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총리의 언급 전까지는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서 '사법부의 판결과는 별도로 한국 정부는 징용 문제가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고, 실제로 한국 정치권 인사들을 통해 그런 분위기가 전달돼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월 15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징용문제)에 대해서 정부의 대책이 나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행정부가 대안을 내도 효과가 꼭 있으라는 보장이 없다","행정부가 나서서 뭘 한다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상 맞지도 않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일본 정부 내엔 한국에서 징용 문제 관련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이 총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컸는데, 해당 발언 이후 총리 관저나 정부내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졌다"고 했다. 일본은 '지일파'로 알려졌던 이 총리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취지다.
일본 정부는 이 총리의 발언 닷새 뒤인 5월 20일 징용 문제와 관련해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 정부에 정식 요청했다.
또 당시 외상이던 고노 다로(河野太郞)는 5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이 총리가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믿고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이 총리는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불화수소 등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고, 8월엔 수출관리상의 우대조치를 제공하는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와관련,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5월 중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다. 일본 정부가 물밑에선 대한 보복 조치를 준비하다가 이 총리의 발언을 명분 삼아 한국을 겨냥한 강경책을 구체화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때리기'는 예정된 수순이었는데 이 총리의 답변을 그 계기로 삼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수출 규제가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 주도로 진행되는 바람에 외무성은 7월1일 발표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일본 언론 보도와 관련해 이 소식통은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개별 품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까지는 몰랐지만,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곧 시행될 것이란 얘기는 외무성 수뇌부도 듣고 있었다"고 했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