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전 靑차장 "北미사일 발사 군사합의 위반 큰 의미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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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남북 군사합의를 설계한 이상철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6일 “최근 북한 미사일 문제가 군사합의 위반인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건 ‘내부 관리’ 의도에 가까운 데다, 9·19 군사합의에 미사일 관련 내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9일 오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부 개관식에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9일 오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부 개관식에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차장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안보대화 특별 세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군비통제 추진 방향’의 토론자로 참석해 ‘북한 미사일 발사가 9·19 군사합의 위반에 해당하나’라는 질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19 군사합의에 나섰고, 이행에서도 과거와 다른 북한의 변화를 보여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지난 2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 북미 관계, 평화체제 구축에 속도가 안 붙자 군사합의 이행에서 소극적으로 변하고, 미사일 무력시위를 전략적인 고육책으로 내놨다는 의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경제 회복’과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이 전 차장은 주장했다. 이 두 가지가 대가로 지불돼야 한·미 정상과의 회담, 9·19 군사합의 등을 통해 핵카드를 포기하고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는 데 대내외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 전 차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 내부 관리가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미국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있는 등 다목적 취지에서 (미사일 발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은 “북한 군사 당국자들과 25년간 협상을 해온 경험에 비춰 9·19 군사합의가 이 정도까지 이뤄질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며 “비무장지대(DMZ)에서 감시초소(GP)를 철거하는 건 김 위원장 외에 군부 어느 누구도 결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폐쇄적 북한 체제에서 철거 GP를 상호검증한 것 자체부터 획기적이었다”며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재래식 군사위협을 해소할 의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은 또 "군사합의 조항을 보더라도 미사일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며 “미사일 문제는 남·북 또는 남·북·미가 협의할 이슈”라고도 말했다. 이는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를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지만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군 당국의 입장과도 같다. 국방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가 완충 지역 수역에서 벌어진 포사격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명문상 군사합의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 전 차장은 남북 관계 개선의 해법 중 하나로 비대칭적인 남북 간 경제력과 군사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경제력을 활용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창의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 전 차장은 “북한의 위협 인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심대하다”며 “북한은 세계 최강국 미국과 동맹국인 남한에 먹힐 수 있다는 논리에서 핵 미사일을 개발하고 120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차장은 “김 위원장은 과거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지도자”라며 “이런 긍정적인 부분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 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라는 세 명의 지도자가 있었기에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 군비통제 등 세 가지를 포괄하는 전략적 틀 속에서 9·19 군사합의가 나올 수 있었다”며 “이 세 가지를 세 명의 지도자가 있을 때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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