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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공항서 'OK 손모양' 유지한채 걷는 소녀...붙잡아 물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에서 한 소녀가 OK 수신호로 위기 모면을 하는 순간을 찍은 영상. [틱톡·웨이보=연합뉴스]

중국에서 한 소녀가 OK 수신호로 위기 모면을 하는 순간을 찍은 영상. [틱톡·웨이보=연합뉴스]

인파로 북적이는 공항에서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에게 끌려간다면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중국에서 납치 위기에 놓인 한 소녀가 긴급 수신호를 활용해 탈출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누군가 OK 수신호를 보낸다면? 

지난 4일 BBC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SNS에는 한 소녀가 공항에서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려 OK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영상이 확산했다. 영상 속 소녀는 한 남성과 함께 걸어가며 조심스럽게 OK 손 모양을 유지했다. 이를 수상하게 본 한 행인이 소녀와 남성을 세워 경위를 물었고, 남성의 납치 계획이 탄로났다.

중국에서 OK 손모양은 범죄 긴급 신고전화 110을 뜻한다. 소녀는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드러내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자 손모양으로 자신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상황을 주변에 알린 것이다. 다행히 한 행인이 수신호를 이해한 덕분에 소녀는 무사히 가족과 재회했다.

이번 사건은 당시 상황이 찍힌 영상이 중국 SNS를 통해 확산하며 알려졌다. BBC에 따르면 중국 네티즌은 소녀의 대처가 훌륭했다는 칭찬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중국인들의 반응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검열과 감시가 심한 중국에서는 이미 비밀신호나 암호가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검열과 감시 수준은 익히 알려져있다. 중국에서는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와 주요 서방 언론들에 접근할 수 없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으로 운영되는 '검열 로봇'을 투입해 인터넷 콘텐트를 대량으로 검열한 뒤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삭제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에게 '777'과 '689'란?  

홍콩 '송환법' 시위대가 쓰는 수신호 [트위터 캡처]

홍콩 '송환법' 시위대가 쓰는 수신호 [트위터 캡처]

중국 정부의 검열과 감시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대도 피하지 못했다. 중국 당국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허점을 이용해 시위자 신원을 추적하고, 시위대가 부른 '레 미제라블' 주제가 음원을 삭제했다.

이 때문에 홍콩 시위대는 홍콩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를 이용해 소통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암호로는 '777'과 '689'가 있다. 시위대 사이에서 두 숫자는 각각 캐리 람 행정장관과 렁춘잉 전 행정장관을 뜻한다.

시위대는 혼란스러운 시위 현장에서 소통하고 필요한 물품을 주고받기 위해 메시지 암호와 다양한 수신호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잡은 손은 육각 렌치 공구를, 승리의 브이 신호는 가위를 뜻한다.

시위대는 암호·수신호 외에도 인터넷 없이도 쓸 수 있는 메신저 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메신저 앱 '브릿지파이'(Bridgefy)의 다운로드 횟수가 홍콩에서 급증했다. 브릿지파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도 블루투스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100m 이내에만 있으면 된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같은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으면 징검다리 처럼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다.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중간에 있는 사람은 메시지를 볼 수 없어 검열과 감시를 피할 수도 있다. 또 방송모드 기능을 이용해 주변 불특정다수에게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홍콩 시위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검열과 감시를 피하기 위한 암호가 활성화됐다. 대표적으로 1989년 7월 벌어진 톈안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뜻하는 '46', '64', '1989'가 있다. 중국 당국은 이 암호들을 검열 대상으로 삼아 관련 숫자가 들어간 콘텐트를 가려냈다. 특히 당국이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와 톈안먼 민주화운동을 뜻하는 1989를 가려내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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