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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재정 확장은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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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또 퍼주기냐, 경제 실책을 언제까지 국민 혈세로 막겠다는 건가, 총선용 현금 살포인가. ”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어제 “내년으로 예정된 1조원의 공공기관 투자를 올 하반기로 당기는 등 연내 공공기관 투자를 5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시중에 쏟아진 냉소적 반응들이다. 정부의 이번 경기보강 대책은 공공기관을 통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집행 등이 골자로, 무차별적인 복지성 현금 살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재정 얘기를 꺼낼 때마다 즉각적으로 이런 부정적 여론이 들끓는다. 재정을 쏟아붓고도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개선 효과는커녕 거의 모든 거시 경제 지표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나쁜 수준으로 악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질렀다. ‘조국 사태’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갤럽 조사를 보면 여전히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25%)이 인사 문제(15%)보다 더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올 2분기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 의 처분가능소득이 6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중산층 가구 비중도 60% 아래로 떨어졌다. 소득불평등을 줄이겠다며 온갖 선심성 복지 현금을 뿌리고도 이처럼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도 전보다 더 먹고살기 어려워졌다. 또 정부와 여당이 유일하게 내세우던 소비도 2개월 연속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기에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공포마저 불거졌다.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르는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해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진입을 막아야 한다. 일정 수준의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번 경기보강 대책에서도 드러났듯이 내년 예산에 513조4000억원을 책정한 확장 재정 기조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재정건전성 악화도 큰 걱정거리지만 세금이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가 아닌 총선만 바라보는 선심성 퍼주기에 쓰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탓이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마당에 더 이상 성적 오르지 않는 공부법에만 매달릴 시간이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성장 동력을 높이는 곳에 제대로 돈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