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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4개월 만의 헌법 손질 왜...하노이 충격서 벗어났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무위원장에게 대사 임면권을 부여하는 등 ‘국가 대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헌법을 개정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30일 전날(29일) 진행된 14기 2차 최고인민회의(국회 격) 소식을 전하며, 국무위원장에게 최고인민회의에서 결정한 법령과 국무위원회의 중요 정령 및 결정, 대사의 임면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헌법에 신설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때 개정한 헌법에서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했던 국무위원장의 권능에 국가원수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최용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9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14기 2차 회의에서 의정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용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9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14기 2차 회의에서 의정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이 헌법 개정 4개월 만에 다시 개정에 나선 것과 관련해선 의문을 낳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새로 구성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첫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국무위원장의 권한도 대폭 강화했다. 특히 북한은 이날 개정한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는데, 김 위원장은 14기 1차 회의를 앞두고 3월 진행된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았다. 이미 ‘행동’에 나섰지만 4월 헌법에선 그냥 넘긴 뒤 8월 재개정을 통해 관련 내용을 담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4월에 기회가 있었고, 김 위원장을 ‘띄우는’ 조항을 상당 부분 명기하고도 4개월 뒤 원포인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개정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 셈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헌법을 개정한 건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를 통틀어도 3~4차례에 불과하다”며 “어느 나라나 헌법을 개정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이번에 국무위원장의 권능만 강화하기 위해 4개월 만에 다시 헌법을 개정한 건 의외”라고 말했다. 4월 헌법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거나, 4월 헌법이 미완이었다는 스스로 밝힌 것이란 설명이다.

2차 북ㆍ미 정상회담(2월 베트남 하노이) 충격파 속에 진행된 4월 헌법 개정이 시간에 쫓겼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법률을 개정한 뒤 이를 운영하며 보완책을 찾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북한은 시범운영을 통해 안정성이 검증된 정책을 법률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예산을 논의하는 정기국회 격인 4월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헌법 개정을 준비하다 보니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을 개정했다는 추후 지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충격으로 인해 덜 준비된 상태에서 헌법을 개정하다보니 국무위원장의 권한에 허전함 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국가 대표자리를 놓고 혼란이 발생해 헌법 개정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헌법 개정 분야를 국무위원회로 한정한 것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북한은 이번 헌법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있던 정령제정권을 국무위원회로 옮기고, 자국 대사의 임면권을 국무위원장에게 이관해 국무위원회(장)를 강화하는 반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권한은 축소하는 조치를 했다.

또 북한이 개정된 헌법 내용을 즉각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북한은 지난 4월 개정한 헌법을 개정하고서도 4개월여 뒤인 지난 7월 11일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번엔 최고인민회의 개최 당일 저녁부터 TV를 통해 알렸다. 김 위원장과 관련한 내용이라는 점도 있지만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경술국치(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날) 109년을 계기로 국무위원장과 국무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국력 과시를 연계하려는 의도”라며 “다음 달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 및 북·중 외교관계 수립(10월 6일) 70주년을 맞아 고위층의 방중 등을 염두에 둔 조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향후 북미 정상회담이나 평화협정을 앞두고, 신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김 위원장의 대내 위상을 서방국가에 과시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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