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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범의 문화탐색

장식미술, 모던 디자인, 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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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1919년 독일에서 바우하우스가 설립되던 해, 한 프랑스인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레이몽 로위(Raymond Loewy). 미국에서 레이먼드 로위로 알려진 그는 머잖아 디자인계의 스타가 된다. 프랑스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에서 ‘보그’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 재능을 인정받아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가 설립한 디자인 회사는 머잖아 미국 최고로 성장했고, 한때 미국인이 사용하는 물건의 절반이 그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회자될 정도였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과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우주선 실내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타임지의 표지에도 등장한 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의 한 사람이었다.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태극문양과 오방색 #전통의 무비판 수용 #각종 흉물 만들어내

레이먼드 로위는 앤디 워홀과 비교할 만하다.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워홀도 광고판 그림을 그리던 상업미술가 출신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화가가 된 그도 팝아트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20세기 미국의 시각문화를 지배한 것은 바로 이 두 명의 이민자 출신 아티스트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둘이 모두 백화점 디스플레이 일을 했다는 사실. 역시 현대 문화의 최첨단은 쇼윈도인 것일까.

로위가 처음에 손댄 것은 주로 기존 제품을 다시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가 주로 사용한 조형 언어는 이탈리아 미래파에서 유래한 유선형(stream-line)이었다. 그러니까 로위는 부품이 노출되고 무뚝뚝하게 생긴 기존 제품들을 유선형의 부드러운 외피로 감싸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품의 여성화(?)라고나 할까. 로위의 ‘터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가 손을 대는 제품마다 판매고가 치솟았고 로위는 디자인계의 미다스가 되었다.

1930~40년대는 장식미술과 모더니즘이 결합된 아르데코(Art Déco)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었고 도시적이면서도 장식적이었다. 대중은 이런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에 반해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모던 디자인은 엄격한 질서를 추구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지성적이기는 했지만 대중에게 그리 친근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치는 바우하우스의 모던 디자인을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며 탄압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했던 오방낭 퍼포먼스. 전통 장식미술을 무반성적으로 수용해 현대적 미감을 갖지 못한 사례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했던 오방낭 퍼포먼스. 전통 장식미술을 무반성적으로 수용해 현대적 미감을 갖지 못한 사례다. [중앙포토]

사실 모던 디자인에는 사회주의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합리적인 디자인에 의해 인간 세상을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일종의 유토피아주의였다. 그러한 모더니스트들은 장식미술가를 경멸했다. 이념 없이 껍데기를 디자인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던 디자이너의 오만함과 디자인에 대한 오해가 깔려 있다. 모던 디자인의 차가운 합리주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다만 모던 디자인이 전통사회의 과다한 장식을 추방하고 절제하는 디자인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있다.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장식미술은 더 이상 과잉 장식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한결 세련되고 현대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먼드 로위의 디자인이야말로 현대판 장식미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에서 장식미술과 모더니즘은 전혀 다른 역사적 패러다임에 속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더니즘이 장식미술과 만나면서 일정하게 대중화되고, 장식미술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봉건적인 장식주의와 결별하고 현대적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서구의 디자인 역사에서는 이러한 습합과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의 습합과 조화를 한국 현대디자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장식미술은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무반성적으로 미화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태극 문양과 오방색은 많은 경우 키치(Kitsch, 저속한 모방물)가 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서구로부터 유입된 모던 디자인은 그 이념적 측면은 제거된 채 하나의 스타일로, 즉 모던 스타일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한국의 모던 디자인, 아니 모던 스타일은 서구와 달리 디자인의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은 완전히 따로 논다.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의 또 다른 융합 버전이랄 수 있는 포스트모던 디자인조차도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동된다. 아무튼 장식미술의 현대화도, 모던 디자인의 합리성도 뿌리내린 적이 없는 이 땅에서는 여전히 전통과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흉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