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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또다른 시한폭탄…중국 충성각서, 광둥어 축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홍콩 사태가 18일 평화 행진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21일 지하철 출근 시위, 24일 공항 진출입로 농성, 31일 대규모 행진 등 시위는 계속 이어지지만, 홍콩 시위대가 평화 시위 기조만 유지한다면 중국의 무력개입 같은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홍콩, 중국과 분리 될 수 없는 일부’ #의원 후보자에 이념 확인서 추진 #대입서 광둥어 말하기·듣기 제외 #시민들 “다음 세대 우리말 못 쓸판”

현재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철회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현지 취재 결과, 그 외에도 시위를 격화시킬 수 있는 ‘도화선’ 같은 사안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었다.

지난 6월 28일 홍콩 정부 교육국 교과과정 대응팀(Task Force on Review of School Curriculum)이  초·중·고교 교육과정 검토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엔 “국어(광둥어) 과목의 시험 횟수 축소, 초·중·고 국어 교육과정에서 듣기·말하기 과정 제외”제안이 담겼다.

현재 홍콩의 대학입학 시험(HKDSE)에서 국어(광둥어) 시험은 읽기(30%)·듣기(22.5%)·말하기(17.5%)·쓰기(30%) 네 부분으로, 각 영역의 시험 결과를 합산한다. 이중 일상 생활과 직결되는 말하기와 듣기 영역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입 시험 과목이 바뀌면 초·중·고 교육 과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현재 홍콩 공교육 시스템에서 광둥어 교육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홍콩 행정부는 시험 제도 변경을 위해 9월 16일까지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이후엔 입법회(의회) 교육사무위원회 토론을 거쳐 투표를 통해 시행 여부가 결정된다. 입법회 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입법회에서 거부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이 사안이 최근 소셜네트워크(SNS) 상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광둥어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가 슬금슬금 홍콩에 본토 문화를 심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홍콩 명보 등 주요 언론도 지난주부터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광둥어 교육 과정 축소가 홍콩 시위의 또 다른 불쏘시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홍콩에선 4년마다 지역 의원 선거가 열린다. 올해 11월 24일이 선거일이다. 그런데 홍콩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6월 11일 갑자기 28가지 선거법 수정안을 냈다.

수정안에는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이 의무적으로 일종의 ‘이념’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확인서엔  ‘홍콩 특별자치구는 중국과 분리될 수 없는 일부다’(2-1) 등이 포함돼 있다.

어떤 후보자가 당선되더라도 기본적으로 중국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홍콩법상 선관위는 입법회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직접 법안을 수정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주장하며 2014년 ‘노란 우산’ 시위를 주도한 황지펑(黃之鋒)은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을 근거로 국민 기본권인 참정권을 제한한 처사”라고 공개 비판했다.

◆미국 “제2 천안문 땐 무역협상 어렵다”=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그들(중국)이 과거 천안문 광장 때처럼 (홍콩 시위를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무역) 합의는 어려울 수 있다”며 홍콩시위와 진행중인 무역협상의 연계를 시사했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당국이 무력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중국 정부가 가장 민감해 하는 이슈 중 하나다.

홍콩=박성훈 기자, 이승호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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