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노인문제는 여성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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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대 문명은 장수라는 인간의 소망을 실현해 주었다. 환경공해와 스트레스 속에서도 예전보다 훨씬 오래 살게 돼 세계가 보편적 장수시대를 맞고 있다. 2001년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76.5세로, 20년 전보다 11년 길어졌다. 특히 여성의 평균수명은 80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올라섰다.

그러나 수명의 연장이 반드시 노년기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산업문명은 노인의 경제적 배제와 사회적 소외를 당연시했다. 한 사회의 근대화 정도가 높을수록 노인의 지위는 낮아진다는 것이 20세기 노년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다. 이를 전제로 20세기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한국에서도 압축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노인의 경제사회적 배제가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평균수명이 선진국 평균에 올라섰지만, 현 세대 한국 노인은 건강과 교육수준이 낮고, 빈곤하고, 소외되고, 의존적인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55세 이상 고령자 취업률(1998년)을 보면 한국은 16.4%로, 일본의 23.2%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높은 편이나 남녀 공히 농어업과 단순 노무직에 집중돼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1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정도였다. 한국 노인의 절반이 자녀와 동거하고 있고 이들의 빈곤율은 4.6%인 데 비해, 노인만으로 구성된 가구의 빈곤율은 31%에 이른다.

특히 평균수명 여든에 이르러, 남성보다 7년 이상 오래 사는 우리나라 여성노인은 여성과 노인이라는 조건으로 이중적.누적적 배제를 받고 있다. 국제적인 비교가 쉽지 않지만 일본 총무청이 97년 발표한 국제비교 조사자료에 의하면 주관적인 건강평가에서 한국은 남성노인의 50%, 여성노인의 23%가 건강한 편이라고 응답한 데 반해 일본은 각각 55%, 48%가, 미국은 각각 69%, 65%가 그렇게 응답하였다.

또 60세 이상 노인 중 취학 연수가 10년 이상인 노인의 비율을 보면 한국 남성 26%, 여성 4%인 데 반해 미국은 76%, 81%, 일본은 41%, 40% 수준이었다. 한국 여성노인의 건강과 교육수준이 특별히 낮은 셈이다. 빈곤의 여성 집중화 현상도 뚜렷해 2001년 현재 기초보장 수급자 중 25%가 65세 이상 노인이며 이 중 75%가 여성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40년 동안 노인들의 경제적 배제와 소외를 당연시하면서도 가족 노인부양기능의 약화를 방치하고, 노인의 사회적 의존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 요구를 외면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 사회는 이중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노인 자살로까지 몰아가는 현 세대 노인의 빈곤과 소외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안전망의 실질적 확충이 시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화.세계화.고령화 시대로 전개될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할 새로운 노인세대를 위한 새로운 노년관이 필요하다.

엄청나게 연장된 노년기를 남녀 노인이 모두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노인이 사회적 부담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는 연령 통합 정책을 개발해 내야 할 것이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빈곤과 소외된 의존인구로만 여겨서는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노인인구의 63%를 차지하면서도 국가정책 범위 외부에 놓여 있던 여성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평생교육 등 인적자본 투자가 중요하다. 동시에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 참여를 위한 모성보호 및 보육시설의 확충, 직업훈련 기회의 확대가 있어야 한다. 또한 남성.여성의 개별 연금수급권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이혜경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