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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8.10 "일본이 망했다"···광복군 광복은 5일 빨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김준경 전 강원 장성경찰서장(사진 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이 예비군 순찰용 자전거 전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고(故) 김준경 전 강원 장성경찰서장(사진 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이 예비군 순찰용 자전거 전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일본O 망했다!” “일본O 망했다!”
1945년 8월 10일. 중국 시안(西安)에 근거지를 두고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맞서 싸운 광복군에 일본의 항복 소식이 전령을 통해 빠르게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 광복군 1지대 3구대에 편입돼 공작 활동하던 고(故) 김준경(1924~1973) 강원 장성경찰서(현 태백경찰서)장을 비롯한 군인들은 일제히 주둔지가 떠나갈 듯이 “한국독립만세!”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광복을 앞둔 생생한 기쁨은 지난 13일 강원경찰청이 공개한 김 전 서장의 수기집『피는 살어있었다』(살아 있었다)에 잘 녹아 있다. 수기집은 340여쪽 분량이다. 김 전 서장은 생전 틈틈이 글을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수기집에는 태어나기 전인 1919년 횡성 3·1운동(강원도 최초의 대규모 만세운동·실제 운동 일은 3월 12일) 때 붙잡혀 옥고를 치른 당숙의 영향으로 독립군 투신을 결정하게 된 과정 등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

고 김준경 전 서장의 수기집 '피는 살어있었다' 표지. [사진 강원경찰청]

고 김준경 전 서장의 수기집 '피는 살어있었다' 표지. [사진 강원경찰청]

안타깝게도 김 전 서장이 평소 써 왔던 글은 6·25 전쟁 참전을 겪으면서 모두 불에 탔다는 게 강원경찰청의 설명이다. 현재 강원경찰청 박물관에 보관 중인 수기집은 김 전 서장이 인생 말기인 1969년 펴낸 내용의 인쇄본이다. 지금과 달리 세로쓰기가 눈에 띈다.

흥분한 광복군 중령 원폭투하를 말하다 

『피는 살어있었다』를 보면, 일본 본토에 원폭이 투하된 이후인 1945년 8월 9일 이미 일본의 패전이 어느 정도 광복군들 사이에서 감지됐음을 알 수 있다. 그날 오후 김 전 서장은 상관(중령)이 불러 동료와 함께 그의 방에 들어갔다고 기술한다. “혹시 대적 명령이 아닐까” 생각하던 찰나 이 중령은 “오늘은 너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고 썼다.

기쁜 소식은 다름 아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였다. 중령은 원폭의 위력에 대해 “투하된 곳으로부터 반경 십 리(3.9㎞) 안에 있는 모든 동물은 물론 모ㅡ든 지상물이 완전 파괴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전 서장은 평소 무게가 있는 그의 말이 흥분된 상태였다고 표현했다. 책에는 원폭에 대해 “새로 발명한 위대한 파괴력을 가진 폭탄”이라는 중령의 기대감도 드러나 있다.

'피는 살어있었다' 속 본문에 미국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 강원경찰청]

'피는 살어있었다' 속 본문에 미국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 강원경찰청]

라디오 녹음방송 통해 나온 일왕 육성 

실제 미국은 그해 8월 6일·9일 두 차례에 걸쳐서 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폭을 떨어뜨렸다. 이후 8월 10일. 쇼와(昭和) 일왕은 미군 등이 포함된 연합군에 항복 의사를 밝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침내 8월 15일 낮 12시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하는 일왕의 육성이 담긴 라디오방송이 일 본토에 울렸다. 이 방송은 전날 녹음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 전 서장은 1944년 11월 중국 허베이 성에서 일본군 3702부대를 탈출한 뒤 중국군 왕륙기 장군 휘하의 15사 유격대에 가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원하지 않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일본군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김 전 서장은 광복군에 편입, 공작원으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았다. 탈출 순간도 수기집에 담겼다.

김준경 전 서장이 직원교육 중인 모습. [사진 경찰청]

김준경 전 서장이 직원교육 중인 모습. [사진 경찰청]

사후에서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돼 

김 전 서장은 나라를 되찾은 이후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미군정(美軍政) 산하 경무국에 투신했다. 현재도 그의 경찰 인사기록이 전해진다. 일반경력란에 ‘45년 8월 20일(까지) 광복군’으로 복무한 사실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사후인 1990년에서야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광복 이후 독립투사나 광복군 출신 중 경찰에 몸담은 인물들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사에서 잊힌 사람들이 많다. 이분들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현양하는 것이야말로 경찰 정신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독립운동가 중 광복 이후 경찰에 투신한 인물은 51명(8월 현재)이다.

김민욱·박진호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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