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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서 10년 만에 고향 땅 밟는 직지원정대원들

중앙일보

입력

2009년 9월 25일 히말라야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실종된 직지원정대 민준영 등반대장(오른쪽)과 박종성 대원. [사진 직지원정대]

2009년 9월 25일 히말라야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실종된 직지원정대 민준영 등반대장(오른쪽)과 박종성 대원. [사진 직지원정대]

“골짜기 좌측으로 이동 중이다. 등반을 마치고 연락하겠다.”
2009년 9월 25일 오전 8시30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히운출리봉(해발 6441m) 등정에 나선 ‘직원원정대’ 등반대장 민준영(당시 37세)씨와 대원 박종성(당시 42세)씨는 이 무전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 험준한 히운출리 북벽 능선 5500m 지점, 베이스캠프를 나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대원 친필 배낭 확인 #박종성·민준영 대원 추정 시신 히운출리 북벽서 발견 #2009년 9월 히운출리 '직지루트' 개척 도중 실종 #동료 "10년 만에 등반마치는 후배들 편안히 쉬길"

남은 원정대원은 이들을 찾아 열흘 동안 수색했다. 헬기를 띄워 북벽 곳곳을 찾았지만 두 대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동료들은 이듬해 원정대를 꾸려 다시 안나푸르나에 올랐으나 역시 흔적을 찾지 못했다. 직지원정대는 2013년 베이스캠프 인근 4200m 지점에 두 대원의 추모비를 세워 이들의 넋을 기렸다.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직지원정대 2명이 10년 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 직지원정대는 최근 네팔등산협회로부터 히운출리 북벽 인근에서 민씨와 박씨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신은 두 대원일 가능성이 크다. 등산복 브랜드가 두 대원이 실종 당시 입었던 것과 동일하고, 등산 장비도 같다. 옷 안에서는 한국 식량이 나왔다. 박연수(55) 전 직지원정대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연락을 받고 나서 10년 전 기억이 떠올라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준영이와 종성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12일 오후엔 박씨가 친필로 쓴 배낭 사진이 추가로 확인됨에 따라 두 대원의 발견 가능성이 확실시 되고 있다. 네팔등산협회가 전달한 박씨의 배낭 레인커버에는 영문으로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고 쓰여 있다. 박 전 대장은 “배낭 레인커버에세겨진 문구가 박 대원의 친필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직지원정대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히운출리봉을 오르는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기 위해 2009년 8월 27일 출정했다. 직지원정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히운출리봉에 ‘직지루트’를 만들려고 했다.

직지원정대 박종성 대원이 2009년 9월 1일 히말라야 히운출리(6441m) 원정 도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길목인 촘롱지역에서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영문으로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라고 직접 썼다. [사진 직지원정대]

직지원정대 박종성 대원이 2009년 9월 1일 히말라야 히운출리(6441m) 원정 도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길목인 촘롱지역에서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영문으로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라고 직접 썼다. [사진 직지원정대]

직지원정대 대원 9명은 서북 능선과 북벽으로 정상 등정을 계획하고 2개 팀으로 나뉘었다. 서북 능선팀이 9월 13일 먼저 정상 공격에 나섰지만, 눈과 얼음이 녹아 등반이 어려운 상태였다. 박씨와 민씨는 북벽팀이었다. 이들은 네팔에 남아 9월 23일 등반에 나섰고 이틀 뒤인 25일 오전 5500m 지점에서 마지막 무선을 끝으로 실종됐다.

직지원정대에 따르면 박씨는 2009년 9월 1일 히말라야 히운출리 원정 도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길목인 촘롱지역에서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영문으로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라고 직접 썼다고 한다. 그는 평소 친여동생처럼 아꼈던 동료 윤해원 대원과 함께 이 문구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해원 대원의 배낭 레인커버 역시, 이같은 문구가 새겨진 것으로 직지원정대는 확인했다.

박씨는 배낭 레인커버에이 같은 문구를 남기면서 ‘히운출리 등정’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김동화 당시 직지원정대원은 “(히운출리) 등반 도중 박종성 대원이 배낭 겉 커버에 이런 문구를 쓴 뒤, 등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은 지난 12일 오후 2시35분 유족과 함께 네팔로 향했다. 박 전 대장 이날 오후 네팔등산협회 관계자와 수습 과정 등에 대해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13일 오전 네팔 포카라로 이동해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서 육안확인과 DNA 검사 등 확인절차를 마무리한 뒤, 오는 17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박 전 대장은 “등반은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며 “히말라야에서 외롭게 지냈을 후배들이 10년 간의 등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히 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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