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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화이트국서 일본 제외했지만 협상 여지는 남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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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윤모 산업 부 장관이 12일 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성윤모 산업 부 장관이 12일 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일본에 전략 물자를 수출할 때 적용해 온 우대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다. 한국도 일본에 깐깐한 수출 심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 국가(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키로 한 데 대한 ‘맞불 카드’다.

일본 ‘가’지역서 ‘가의 2’로 낮춰 #수출 우대 철회 내달 시행 예정 #“일본이 협의 요청 땐 응할 것” #일본 “한국 조치 WTO 위반 소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4대 국제 수출통제 체제에 모두 가입한 국가를 ‘가’ 지역에, 그 외의 국가를 ‘나’ 지역으로 분류한 기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가’ 지역을 ‘가의 1’ ‘가의 2’ 2개 지역으로 세분화하기로 했다”며 “개정안에 일본을 신설한 가의 2 지역으로 분류해 원칙적으로 나 지역 수준의 수출 통제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지는 않지만 전략물자 수출 우대 혜택은 없애 실질적으로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다. 산업부 관계자는 화이트 국가에서 일본을 배제하는지에 대해 “한국은 일본처럼 화이트 국가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일본이 그간 받았던 수출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측면에서 보면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바세나르 체제 등 4대 전략물자 국제 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국(일본 포함)을 ‘가’ 지역에 편성해왔다. 이 지역에 1735개 전략 물자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간소화한 수출 심사를 해주고 있다. ‘가’ 지역 외는 모두 ‘나’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날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업종 간담회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운데)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왼쪽),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뉴스1]

이날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업종 간담회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운데)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왼쪽),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뉴스1]

앞으로 ‘가의 2’에 포함되는 일본이 받게 되는 수출 통제 수준은 쉽게 말해 기존 ‘가’ 국가와 ‘나’ 국가의 중간이다. 예컨대 자율준수기업(CP)에 내주고 있는 사용자 포괄허가는 ‘나’ 지역처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하지만 전략물자의 중개허가는 ‘가의 1’처럼 심사를 면제하는 식이다.

성 장관은 일본을 ‘가의 2’ 지역으로 분류한 배경에 대해 “국제 수출통제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용하거나 부적절한 운영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려우므로 이를 고려한 수출 통제제도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한국을 배제한 논리를 그대로 따와 맞받아친 것이다.

이번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은 통상적인 고시 개정 절차에 따라 20일간의 의견수렴,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협상 여지는 열어뒀다. 성 장관은 “의견 수렴 기간에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건 이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해 소재·부품·장비 등 3대 품목에 대해 수출을 제한한 것처럼 특정 제품을 지목해 대일 수출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일본이 우리에게 하던 방식으로 똑같이 맞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다”면서 “다만 향후 제도 운용상 문제가 발견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다’ 지역을 신설하고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이번 개정안 수준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주는 등 보복 강도를 조절하고 있는 데다 세계무역기구(WTO) 맞제소 등으로 역공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공세 수위를 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일본 외무성 부대신은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어떤 이유인지 확인하겠다”는 단서를 달고 “이게 일본의 수출관리 조치 재검토에 대한 대항조치라면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만 한국으로부터 일본에 (수출하는) 미묘한 전략물자는 거의 없지 않나? 별로 실질적인 영향은 없을지도?”라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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