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엘튼 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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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벅스뮤직(www.bugsmusic.co.kr) 같은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 들어 가서 엘튼 존(Elton John)의 노래 '노란 벽돌 길이여 안녕(Goodbye yellow brick road)'을 들어 보라. 경쾌한 박자와 시원한 멜로디가 귓전에 가득하다.

늦가을 바람을 타고 길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노란 낙엽을 보는 것같지 않은가. 피아노와 기타. 드럼의 음(音)들이 솟구치고 맑고 강렬한 사람의 목소리는 화살처럼 팽팽하게 쏘아졌다가 놀랍게도 사뿐히 내려앉는다. 엘튼 존은 사방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노래했다. 1973년이었다.

'여기는 나를 영원히 잡아둘 수가 없어/사회의 개들이 짖어대는 곳/숲에서 늙은 부엉이들이 우는 곳으로 돌아가겠어/노란 벽돌 길 너머에 있는 그곳에 내 미래를 설계하기로 결심했다네/도시의 당신들은 보드카나 토닉 같은 독한 술에 흠뻑 취해 살겠지…'.

자기 노래처럼 시골의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한다 해도 엘튼 존은 인생의 중간 단계마다에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모색하려 했다. 그는 엊그제 런던의 아파트에 있는 모든 살림살이를 떨이로 경매했다. 화려한 옷들과 갖가지 그림, 골동품과 명품, 가재도구를 몽땅 팔아 넘겼다. 자신의 삶에 완벽한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엘튼 존은 88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에도 자기 재산을 팔아 치웠다. 마흔한살 때였다. 경매로 번 돈은 에이즈 퇴치 재단에 전액 기부했다. 당시 그는 술과 코카인으로 성대에 이상이 생겨 수술까지 받는 등 심신이 극도로 찌든 상태였다. 엘튼 존에게 고가의 재산 처분은 병든 몸과 마음을 갱신하는 수단이었다. 이번의 '떨이 세일'은 좀더 근본적인 갱신을 목표로 했다. 버리는 삶, 비우는 삶, 소박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들 눈에 존이 추구하는 무소유 가치는 가진 자의 또 다른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돈은 나쁜 주인이기도 하고, 훌륭한 하인이기도 하다는 말도 있다. 많은 재산을 갖고도 돈에 대해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은 돈을 나눠 쓰는 데서 행복을 찾는 이도 있다. 부(富)를 향해 질주하는 인생의 어느 한 중간쯤에서 엘튼 존을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