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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보면 절로 웃음 난다던 천생 소방관이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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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안성시체육관에서 열린 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故) 석원호 소방위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과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안성시체육관에서 열린 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故) 석원호 소방위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과 운구 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안성 화재로 순직한 석원호 소방위 영결식

“존경하고 사랑하는 석원호 소방위에게. 따뜻하고 성실하고 사명감 가득한, 누가 뭐래도 천생 소방관의 마음으로 선배에게 믿음을 주고 후배들에게 우직하고 모범적인 선배로 귀감이 된 당신….”

8일 오전 경기도청장으로 거행

8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체육관에서 지난 6일 안성 공장 화재로 순직한 석원호 소방위의 영결식이 경기도청장으로 치러졌다. 석 소방위의 후배인 송종호 소방장이 조사를 읽기 시작하자 숙연했던 영결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문호 소방청장 등과 수백 명의 동료 소방관이 체육관을 빈틈없이 채웠다.

송 소방장은 “당신의 소식을 듣는 순간 따뜻하고 성실하고 사명감 가득한 당신의 마음이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당신을 무시무시한 화마 속으로 보낼 수밖에 없던 그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가 너무 원망스럽다”며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이어 “마음속에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이제 형이라고 불러야겠다”며 “아들이 전교 회장에 당선됐다고 저녁까지 사주며 자랑하던, 아이들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던 형.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가슴속에 간직하겠다. 이제 천근만근 어깨를 누르던 짐을 내려놓고 영면하시길 기도한다”고 울먹였다.

8일 경기도 안성시체육관에서 고 석원호 소방위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최은경 기자

8일 경기도 안성시체육관에서 고 석원호 소방위의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이재명 “가슴 무너진다” 

향년 45세인 석 소방위는 2004년 경기도 송탄소방서에 임용돼 화성소방서·안성소방서 등에서 화재 진압, 구조, 홍보, 행정 등의 업무를 두루 맡았다. 2008년에는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학창시절에 야구 선수로 활동할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석 소방위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선후배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동료로 꼽혔다고 한다.

장의위원장을 맡아 휴가 중 영결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영결사에서 “석원호 소방위는 참된 소방관이었다. 지하에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다”며 “소방관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것에 가슴이 무너진다.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이번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다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다하겠다”고 한 뒤 굳은 표정으로 유족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고 석원호 소방위의 운구 차량이 동료 소방관들의 경례를 받으며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고 석원호 소방위의 운구 차량이 동료 소방관들의 경례를 받으며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70대 아버지 눈물 주체 못해  

고인의 70대 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계속 얼굴을 문질렀다. 헌화할 때는 하늘을 향해 혼잣말하며 한참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석 소방위의 고등학생 아들은 비통한 표정이었지만 영결식 내내 허리를 곧게 펴고 자리를 지켰다. 유족에 이어 장의위원, 국회의원, 도의원, 소방관 동료들의 헌화가 계속됐다. 잘 개어진 소방복과 모자가 놓인 단상은 국화로 뒤덮였다.

이날 고인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지난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을 보내 “석원호 소방장은 고귀한 희생정신을 남기고 가셨다. 대한민국은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유족을 위로했다.

석 소방위는 지난 6일 발생한 안성 종이상자 제조공장 화재에서 인명을 구하려 지하에 진입하다 폭발로 숨졌다. 이 화재로 고인과 함께 출동한 이모(58) 소방위가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었으며 공장 관계자 9명이 다쳤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지난 7일 현장 합동 감식을 하는 등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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