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vs 악마' 세기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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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마피아의 본거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배트맨'과 '악마'가 세기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최근 보도했다.

'배트맨'은 이 지역 사람들이 마피아 전담 기동경찰 반장 주세페 리나레스(37)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리나레스는 밤이 되면 방탄차량을 몰고 '악마'를 찾아 나선다. '악마'는 올 4월 이탈리아의 전설적 마피아 두목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73)가 체포된 뒤 그의 후계자로 급부상한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44)의 별명이다.

리나레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젊고 미남인 데다 마피아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이다. 리나레스는 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는 엘리트 경찰이다.

리나레스가 마피아 잡는 경찰이 된 것은 1983년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기소한 지안 지아코미 시아치오 몬탈토 검사가 살해된 것이 계기였다. 당시 법과 문학에 심취한 고등학생이었던 리나레스는 마피아 조직에 국가 공권력이 보복당한 이 사건에 깊은 충격을 받아 마피아와의 전쟁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만화광인 '악마' 데나로는 만화에서처럼 자신의 차량 앞 부분에 경기관총을 달고 다닌다. 데나로 역시 젊고 미남인데다 리나레스처럼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다. 데나로가 공학학사 학위를 받은 '식자'라는 점도 리나레스와 닮았다.

하지만 데나로는 타고난 마피아로 일찍부터 폭력이 몸에 밴 인물이다. 시칠리아 서부 카스텔베트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지역 마피아 대부였던 돈 치치오의 아들로, 마약 밀매를 통해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다.

그는 지금도 마약 재배지가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8세 때 처음 살인을 저지른 데나로는 지금까지 50여 차례나 사람을 살해한 '킬러'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리나레스는 마피아와 전쟁을 치르다가 폭사한 팔코네 판사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이탈리아 마피아의 '공적 1호'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나레스는 "도망 중인 마피아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그가 숨기 위해 파헤친 흙까지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밤마다 전쟁에 나서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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