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아시아 - 유럽 프레스 포럼] 후나바시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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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적 질서의 변화가 예고된다. 그 변화에서 주목할 점은.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초강력 수퍼파워 같은 문제들의 도전이 날카롭다. 이라크 민주화에 성공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잘 다루면 이슬람 극단화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는 없다. 발리 테러, 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서 나타나는 이슬람 그룹의 독자화 현상 등을 보라. 이슬람 극단화는 30~40년 동안 축적돼 온 현상이다. 이슬람의 위협은 공산주의 위협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게 첫째 주목거리다.

둘째는 미국 문제다. 9.11사태는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제기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에 대응하면서 세계를 불필요하게 흔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맹 관계도 흔들었다. 반테러.대량살상무기(WMD)정책에서 미국은 확실히 달라졌다. 테러.WMD의 주된 타깃인 미국이 갖는 공포감은 다른 나라와 다르며 그런 인식의 차이가 세계를 더 분열시킬 것이다."

-동북아시아엔 어떤 영향이 미치겠는가.

"미국의 신보수파는 승리하지 못했다. 특히 북한 정책이 그렇다. 그러나 완전 실패도 아니다. 아직도 거부하는 힘은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을 중립화시키고 대북 평화정책의 열기를 식힐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6자회담 참여는 그들이 아직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동북아에 대한 동맹 우선 정책은 유지될 것이다. 또 미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처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네오콘의 일방주의가 그대로 적용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과의 관계에는 유의할 면이 있다. 최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사단 재배치를 강조한 데는 전략적.심리적.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건 '협박(bulling) 전략' 이며 노무현(盧武鉉)정부에 대한 경고다."

-이라크 재건에서의 유엔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다.

"유엔의 개입 방향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유엔에 더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후세인 체제의 해체, 종족 갈등, 이란.터키 문제 등등 널려 있는 과제를 유엔만으론 풀 수 없다. 미국의 확고한 개입없는 유엔은 한계가 있다. 유엔은 천국으로 이끄는 열쇠가 아니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장치일 뿐이다."

-일본과 한국엔 이라크 파병 문제가 걸려 있다. 일본이 파병을 결정한 배경은.

"북한 핵 위협이다. 그 때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일본이 파병을 반대하면 미국이 불쾌해할 것이란 점도 고려됐다. 사실 미국과의 동맹이 안보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것을 한국과 일본은 안다. 두 나라 모두 미국의 이라크 실패를 지켜볼 만큼 여유로운 입장도 아니다. 이런 때 부시를 모욕하지 말고 이라크 재건을 도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파병을 지지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전망은.

"6자회담의 방향은 옳은 것이다. 또 일관된 대북 정책을 만들 능력이 없는 미국이 중국에 '아웃소싱' 방식으로 책임을 맡긴 것이다. 전망은 다양하다. 최선은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개발 동결에 이어 개혁에 나서고 미국이 북한에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것이다. 최악은 북한이 회담을 하면서 뒤로 핵을 개발하는 것이다. 북한이 시간벌기를 한다는 의심이 있다. 그러나 북한도 이라크 문제에 골치 아픈 미국이 회담을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한다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런 의심이 해소돼야 회담이 산다. 6자회담의 앞날은 험난하며 따라서 현실적 전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만난 사람=안성규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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