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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노 대통령, 김병준 그리고 전교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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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3년간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가장 놀라웠던 건 상전벽해가 된 청계천보다 아파트값이었다. 10억, 20억원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는 강남의 아파트값에 기가 찼다. 비(非)강남권에 사는 처지에는 배도 좀 아팠다.

"이봐, 내 말 들어. 빚을 내서라도 강남에 전세 끼고 평수 넉넉한 아파트 하나 사 놓고 떠나라고."

특파원으로 가기 직전인 2003년 초 한 선배가 그런 조언을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러는 선배한테 "에이, 뭔 소립니까. 정치부에 있을 때 노무현 후보를 취재해 저도 좀 아는데, 취임하면 아파트값은 확실히 잡을 겁니다"고 대꾸했었다. 돌이켜 보니 참 민망하다.

오랜만에 돌아와 회사 동료와 학교 동창, 취재하면서 사귀었던 사람들을 두루 만났다. 어느 자리든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는 역시 '아파트'였다. 신문사에 갓 입사한 새파란 후배들이 술자리에서 "누가 강남 어디 사는데 아파트값이 얼마 올랐다더라"는 얘길 주고받을 땐 가슴 아팠다. 기자가 된 젊은 그들이 아파트값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는 방향에 대해 더 고민해 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기자 생활 20년쯤 했지만 요즘처럼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배웠든 못 배웠든, 사회 초년병이든 회사 간부든 모이기만 하면 아파트값을 떠들어 대는 현상은 처음 본다. 또 앞으로 아파트값이 폭락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감안하면 역시 실패다.

여권의 한 386 인사가 "국민이 속물이고 이기적이다"고 불평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에 대해선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캠프가 선거 때 상대 후보를 향해 외쳤던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를 원용해 한마디하고 싶다. "인간의 이기심을 감안하지 않은 어떤 정책도 탁상공론일 뿐이야, 이 멍청아."

그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사실상 총괄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육부총리가 된다. 꽤나 의아하면서도 대담한 인사다. 노 대통령은 왜 김병준을 다른 자리도 아닌 말 많고 탈 많은 교육부총리로 지명했을까. 그가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어서. 퀴즈 한번 내 보자. ' ①김병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했다고 보고 교육도 성공할 것으로 믿어서 ②부동산은 실패했지만 교육은 성공할 것으로 생각해 ③성공.실패를 떠나 교육을 확 휘저을 인물이 필요해서 ④인간적으로 김병준한테 한 자리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식적인 인사로 보긴 어렵다.

'노의 남자'로 알려진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향후 행보는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뭔가를 막 밀어붙이든가, 정반대로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든가다. 둘 다 교육 자체를 위해선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만나 본 적도 없는 김병준 부총리 후보자께 감히 고언을 한다. 나 역시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장관이 누가 되든 교육 정책은 성공하길 바라는 심정에서다. 김 후보자는 노 대통령 옆에서 국정을 운영하며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켜봤을 것이다. 교육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한 이유도 알 것이다. 왜 다들 자기 나라 놔두고 미국으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하다못해 필리핀으로까지 나가 기러기 생활을 하는지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전교조든, 아니면 노 대통령 주변의 운동권 386이든 교육 경쟁력을 가로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시대를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과 싸워 달라. 역설적이지만 그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 후보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쉽진 않을 것이다. 여권 내에서 집중포화를 받아 금방 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은 그런 고군분투에 분명 박수를 보낼 것이다. 교육 경쟁력의 발판을 만든 인물로 기억할 것이다. 경쟁하고 승복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사의 이치를 거부하는게 전교조와 소수의 이상주의자, 코드 인물들 외에 누가 또 있는가.

김종혁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