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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버르장머리 고쳐놓겠다"…더 센 말로 일본 때렸던 Y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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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이트리스트 배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이트리스트 배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가 확정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가해자’ ‘민폐’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력히 유감을 표명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한ㆍ일 관계

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일본의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대일 전면전 선포라는 해석이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다. 문 대통령의 공개적 경고와 분노가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제 와서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의 양식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본은 직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제 와서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다면 국제사회의 양식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본은 직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뉴스1]

역대 정부 이래, 특히 민주화된 이래 한·일 관계에 위기가 오곤 했고 중심엔 과거사 문제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이다. YS는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앞서 에토 다카미 일본 총무청 장관이 “한·일 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을 한 후였다. 노사카 고켄 관방장관은 YS 발언 후 “(버르장머리란 말은) 거의 공식으로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알고 있다”며 “보다 절도 있는 발언을 해주기 바란다”고 항의했다.

YS는 취임 첫해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며 반일 행보를 했다. 일각에선 YS 임기 말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일본이 한국을 돕지 않은 걸 YS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김대중(DJ)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이 IMF (위기의) 동기가 된다. 소위 일본이 우리나라 어음 가지고 있는 걸 다 돌려버렸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3월20일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대북정책 공조체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3월20일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대북정책 공조체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DJ는 한·일 관계의 전환기를 만들려했다.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와 ‘21세기 한일 공동 파트너십’ 선언을 한 게 대표적이다. 도쿄 납치사건의 피해자였던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양국 정상회담에서 “25년 전 납치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나의 불행했던 과거는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모두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납치의 주체는 박정희 정권이었지만 일본 정부도 끝내 사건 봉합에 동의했다는 걸 거론한 게다. 공동 선언문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하지만 DJ 임기 말엔 양국 간 긴장감이 고조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다시 한·일 관계가 악화했다. 2005년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독도 문제나 신사 참배 문제 등에 관해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병·징용 등의 피해에 대한 진상을 규명을 주도했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 논쟁이 다시 점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를 방문한 이 대통령은 주둔 경비대원들을 격려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 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를 방문한 이 대통령은 주둔 경비대원들을 격려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 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한·일 관계를 다시 개선하려고 했다. 하지만 임기 후반엔 냉랭해졌다. 상징적 장면이 현직 대통령 최초로 2012년 8월 10일 독도를 방문한 것이다. 당시 일본이 ‘2012 방위백서’에 독도 관할부대를 명기하면서 국민감정이 들끓고 있었다. 이후  8월 14일에는 “(일왕이 방한하려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 일본 열도가 들썩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국내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막는 등 ‘혐한’ 캠페인이 이어졌고 일본 정부도 공식 항의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당시 야당이던 이해찬 민주통합당 의원은 “깜짝쇼이자 정말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초 대일 강경 기조를 한동안 지속했다. 취임 첫해이던 2013년 3·1절 기념사에선 “가해자·피해자란 입장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말해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또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3년 연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다 취임 약 3년 만인 2015년 11월 2일 첫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고 그해 말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두고 “피해자의 동의 없는 정부 간의 합의는 2차 가해(조국 전 민정수석)”라는 기조로 비난하며 사실상 파기했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재고려하게 된 계기로 꼽는 순간이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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