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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심야 미사일 발사···판문점 '새벽잠 약속' 깬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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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한동안 멈췄던 북한의 미사일 시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지난 5월 4일과 9일 각각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신형 단거리 전술유도무기(KN-23) 발사로 미사일 카드를 다시 꺼내든 북한은 지난달 25일과 31일에 이어 2일 함경남도 영흥 인근에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쐈다. 올 들어서만 다섯번째 미사일(급) 발사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연합훈련(8월11일)이 다가오면서 긴장의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1일 정보위에서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 오전 3시 17분쯤 평남 평성에서 화성-15형을 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새벽잠을 깨우지 않겠다"고 했으나, 북한은 2일 오전 3시를 전후해 함남 영흥 인근에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 오전 3시 17분쯤 평남 평성에서 화성-15형을 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새벽잠을 깨우지 않겠다"고 했으나, 북한은 2일 오전 3시를 전후해 함남 영흥 인근에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단, 2017년 이전과 달리 북한이 중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지대지 전술 무기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이는 미국을 의식하면서도 한국을 압박하는 갈라치기 성격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지난달 25일 미사일을 쏜 뒤 남조선(남측) 용이라고 주장했다”며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무력시위를 하면서도 미국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는 차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화성-14ㆍ15형등 대륙간탄도미사일급 무기에 민감해 하는데 최대 사거리 600㎞ 정도되는 단거리 발사체를 활용해 시위에 나섰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없고, 전쟁 위협이 줄었다”며 ‘치적’을 강조하고, 연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판문점 회담서 '새벽잠 보장' 약속 #한국의 중재 역할, F-35 도입에 화 났나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신형 무기를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새벽 발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ㆍ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은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막바지 개발 과정에서 자정이나 새벽에 미사일을 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경우 청와대와 외교안보부처가 대응을 위한 회의에 나섰던 점을 염두에 둔 언급이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군사적 긴장완화가 이뤄지면 미사일을 쏠 일이 없을 터이니 맘놓고 주무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북한은 2일 오전 2시 59분경, 오전 3시 23분쯤 미사일(발사체) 발사버튼을 눌렀다. 지난 5월 4일과 9일 각각 오전 9시 6분과 오후 4시 29분 등 ‘일과시간’에 미사일을 쐈던 북한이 지난달에는 5시 34분(25일), 5시 6분(31일)으로 발사시간을 당기더니 2일엔 오전 3시대를 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북한의 무력시위를 현지에서 꼬박꼬박 지켜봤는데, 이날 발사현장도 지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정보 당국자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김 위원장의 재가가 떨어진 뒤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김 위원장이 관계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발사 장소나 시간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스스로 판문점의 ‘새벽잠’ 약속을 깼다는 의미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이 끝날 때까지 미국과 (비핵화)협상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이 기간 동안 신형 무기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뜻이 먹히지 않으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며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경협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약속했는데, 한국이 이행하지 않으니 자신도 안지키겠다는 불만의 표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협상을 앞둔 미국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의 연합훈련이나 F-35 도입 등에 대한 불만을 한국 때리기와 새벽잠 깨우기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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