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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 30년 뒤 어떻게 기록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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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30년 뒤에 역사가들은 한·일 갈등이 고조된 이 시기에 한국·일본·미국이 취한 외교 전략을 어떻게 평가할까? 일부 일본인 학자는 아베 총리를, 일부 한국인 학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역사가는 한·미·일 3국의 외교적 실책을 비판할 것이다.

외교적 실책, 후손에게 욕먹을 일 #한·미·일 지도자 모두 질책당할 것

미래의 역사가들은 최근의 러·중 연합 비행훈련에 대해 한·일 양국이 합동하여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그들이 집필할 책에는 민주주의 동맹국 간의 불화가 깊어진 시기를 틈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 2020년이나 2021년에 새로운 도발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실리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오늘날의 한·일 갈등을 기점으로 중국의 일방주의 무역이 확장돼 70년의 자유무역 확대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담길지도 모른다. 기술 전문가들은 삼성·NEC 등 주요 한·일 기업들이 합작해 5G 통신기술을 개발했더라면 화웨이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기는 상황을 차단할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할 것 같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합의를 2년 만에 깬 것을 비판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개인 배상 요구가 한·일 청구권 협정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법원에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표시할 것 같다.

물론 일본에 대해서도 냉엄한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2015년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간의 합의가 한국에서 사회적·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일본이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한국과의 관계에 유독 취약한 이유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잘못된 조치로 한국 업계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결국 일본 주요 수출 기업들의 쇠퇴까지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중국이 일본에 대해 2012년의 희토류 수출 금지와 유사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하고는 ‘일본의 2019년 대한 수출규제 정책과 같은 경우’라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의 외교 역사가들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 트럼프 정부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이 명백한 실패임을 증명한 시기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한·일 갈등 문제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다 미국까지 피해를 보게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하기로 결정하면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미 관계에도 타격이 생긴다. 최악의 경우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균열로 인한 작전 부족과 정보공유 부족의 빈틈을 노려 북한이 새로운 위협을 가할 수도 있고, 미국이 이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상황들은 가정일 뿐이다. 현재의 갈등은 30년 후 역사가들이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갈 만한 사소한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수출 규제에 대한 협의를 제안했고, 아베 총리가 이에 합의해서 한·일 갈등이 봉합됐다’는 식으로 말이다. 30년 뒤 한·미·일 외교부 장관이 모여 동북아시아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계획에 합의하는 사진이 실리는 미래의 역사 교과서도 기대해 볼 만하다. 삼성과 NEC의 합작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10G 통신기술 개발을 발표하고, 통일 한국과 일본의 우주비행사들이 협력하여 화성에 대한 국제 연구를 진행한다는 역사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도자들의 대담한 외교·정치 리더십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긍정적 발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공로는 30년 후의 역사가들도 인정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