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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에 저고도…북 또 미사일 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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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31일 오전 5시6분과 27분쯤 강원도 원산 갈마반도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두 발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서 동북 쪽으로 쏜 미사일들은 고도 약 30㎞를 찍고 약 250㎞를 날아갔다. 지난 25일 인근 호도반도(함경남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라고 불리는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지 엿새 만이다. 올 들어서만 네 번째, 문재인 정부 들어선 15번째 미사일 도발이다.

6일 만에 원산 갈마 일대서 2발 #이번엔 고도 30㎞ “요격 회피 목적” #NSC 소집 “평화에 부정적 영향” #정경두 “북한 계속 도발하면 적” #사거리 250㎞ 사리원서 쏘면 #F-35A 있는 청주기지 닿는 거리

한·미 정보당국은 시험발사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잇따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론 대미 압박용 무력시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갈마반도 일대는 비가 내리고 구름이 짙었다. 보통 미사일 시험발사는 성능을 파악해야 하는 전자장비 때문에 맑은 날에 한다. 북한이 악천후에도 발사를 강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참 관계자는 “지난 25일과 유사한 미사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초기 평가는 KN-23”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KN-23을 5월 2차례, 이달 2차례 모두 4차례 시험발사했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KN-23을 다양한 조건과 사거리로 쏘면서 전력화를 하고 있다”며 “특히 고도를 30㎞로 낮춘 것은 한·미의 탐지를 어렵게 하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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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낮은 고도에서 불규칙한 기동을 하는 KN-23이 한·미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패트리엇 체계로 대응이 가능하며, 현재 전력화 중인 천궁 미사일(철매-Ⅱ)로 요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은 “이달 두 차례의 KN-23 발사는 한·미 모두에 보내는 경고성 도발”이라며 “한국엔 9·19 군사합의에 따라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면서 재개 조짐이 있는 미국과의 실무 협상을 유리한 조건에서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KN-23 발사 후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도입과 한·미 연합 훈련을 가리키며 “부득불 남쪽에 존재하는 국가안전의 잠재적 직접적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한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사일 도발 15번 만에 … 문 정부, 북한에 적 개념 꺼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3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KIDA 국방포럼’ 기조연설을 마친 뒤 정석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왼쪽), 원인철 공군참모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정 장관은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원산 갈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김경록 기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3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KIDA 국방포럼’ 기조연설을 마친 뒤 정석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왼쪽), 원인철 공군참모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정 장관은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원산 갈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김경록 기자

군 관계자는 “군사적 측면에서 KN-23 도발은 F-35A의 맞불”이라고 말했다. 사거리 250㎞는 군사분계선(MDL) 후방인 사리원 인근에서 F-35A가 배치된 청주 공군기지까지 닿는 거리다.

미 정부 관리는 30일(현지시간)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지난주 23~24일 방한 기간 미 NSC 관리들이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판문점 접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6·30 판문점 회동 때 찍은 기념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NSC 고위 관리는 북측 관리에게 사진을 직접 전달하면서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약속했듯이 언제쯤 실무협상을 재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북한 관리는 아주 빨리(very soon) 협상을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만 답했다”고 말했다. 북측을 만난 인사는 매슈 포틴저 NSC 아태담당 선임보좌관과 앨리슨 후커 한반도 담당 선임 국장일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내에서 “실무협상 날짜·장소는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리 머지않아(before too long) 시작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북한의 KN-23 발사에 대해 “누구나 하는 작은 것들(smaller ones)을 시험했다”고 한 것도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언급으로 해석된다. 정 소장은 “북한은 핵실험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미국과의 약속을 깨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자극하려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다시 한 번 도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를 열고 “위원들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평화 구축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한편 이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敵)’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국방포럼 기조연설에서 “오늘 새벽 2회에 걸쳐 북한이 미상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말하면서다. 비록 ‘도발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국방 당국자가 누가 묻기도 전 북한을 상대로 ‘적’ 개념을 꺼낸 것은 드물었다. 정 장관은 지난해 9월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때만 해도 ‘주적관’ 질문과 관련, “북한 정권과 북한군으로만 (적이) 제한된 부분은 상당히 축소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야당 반발을 샀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철재·김준영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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