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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잼룩은 옛말…반바지·샌들이 ‘여름 사무실‘ 대세

중앙일보

입력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직원들이 26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시원차림 패션쇼’에서 휴가철 안전 가이드 옷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서울시청]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직원들이 26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시원차림 패션쇼’에서 휴가철 안전 가이드 옷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서울시청]

2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 서울시 직원 800여 명이 모여 정례조회를 하는 자리였다. 이날은 여느 조회 때와 달리 단상에 임시 런웨이가 만들어졌다.

서울시 환경정책과 男직원 17명 가운데 #7명이 반바지…“일부 부서선 자리잡아” #간편한 차림 독려하는 패션쇼 열기도 #실내 온도 28℃ 유지…2℃ 낮추는 효과 #불편한 시선, 과도한 노출은 논란거리

서울시는 이날 조회와 함께 직원들이 노타이·반바지 등 간편한 근무·휴가 복장을 선보이는 ‘시원차림 패션쇼’를 열었다. 여성가족정책실, 문화본부, 기후환경본부, 소방재난본부에서 각각 5~10명이 모델로 나와 런웨이를 누볐다. 시원차림은 ‘시원하다’와 옷매무새를 갖춘 상태를 뜻하는 ‘차림’의 줄임말이다.

평가는 직원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소음측정기로 재서 등수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여름철 ‘휴가룩(휴가 때 추천할만한 가벼운 옷차림)’을 선보인 문화본부가 102데시빌(㏈)로 1등을 차지했다. 수박 다섯 통과 문화상품권이 부상이었다.

22일 오후 서울시 환경정책과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날 환경정책과 남자 직원 17명 중 7명이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했다. [사진 이승한]

22일 오후 서울시 환경정책과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날 환경정책과 남자 직원 17명 중 7명이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했다. [사진 이승한]

이날 행사는 기후환경본부 환경정책과가 기획했다. 환경정책과 소속인 이승한(38) 주무관도 흰색 티셔츠와 면 소재의 반바지, 정장구두 형태의 컴포트슈즈를 신고 패션쇼에 나갔다. 소형 선풍기와 컴퓨터 키보드를 들고 ‘근무복’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도 했다. 이 주무관은 “조회 전날 무대를 걷는 연습을 한 것 빼고는 평소 그대로의 복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2016년부터 여름이면 으레 티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다. 대외 행사나 회의가 있는 날 정도만 예외다.

이 주무관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환경정책과에는 남자 직원 17명이 근무하는데, 이날 7명이 반바지 차림이었다. 이상훈 환경정책과장은 “서울시는 2012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반바지·샌들 차림을 권장하고 있다. 현업 부서에서는 꽤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원차림을 하면 체감 온도를 2℃가량 낮출 수 있어 정부 정책에 따라 28℃를 유지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 능률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시장(왼쪽에서 둘째)과 김원이 정무부시장(맨 왼쪽), 김의승 기후환경본부장(셋째), 진희선 행정2부시장(넷째) 등 서울시 간부들이 22일 열린 ‘시원차림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 서울시]

박원순 시장(왼쪽에서 둘째)과 김원이 정무부시장(맨 왼쪽), 김의승 기후환경본부장(셋째), 진희선 행정2부시장(넷째) 등 서울시 간부들이 22일 열린 ‘시원차림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 서울시]

염태영 수원시장(오른쪽 파란색 셔츠 입은 사람)과 조명자 수원시의회 의장(왼쪽)이 지난 8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반바지 패션쇼에 무대를 걷고 있다. [사진 수원시]

염태영 수원시장(오른쪽 파란색 셔츠 입은 사람)과 조명자 수원시의회 의장(왼쪽)이 지난 8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반바지 패션쇼에 무대를 걷고 있다. [사진 수원시]

허성무 창원시장(왼쪽에서 셋째)이 지난 3일 여름철 혹서기를 맞아 간편한 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는 ‘프리패션 데이’ 행에 맞춰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허성무 창원시장(왼쪽에서 셋째)이 지난 3일 여름철 혹서기를 맞아 간편한 복장으로 출근할 수 있는 ‘프리패션 데이’ 행에 맞춰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서울시 간부들도 적극적이다. 김원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얼마 전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 점검회의 때 반바지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날 패션쇼에서도 마지막 순서로 박원순 시장과 진희선 행정2부시장, 김원이 부시장, 김의승 기후환경본부장 등 주요 간부들이 반소매셔츠, 반바지, 발목 양말까지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흥을 돋웠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서 직장인 남성의 반바지·샌들 차림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매년 이맘때면 남녀 직장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단골 화젯거리이기도 하다.

민간기업에서 삼성이 2008년 넥타이를 풀고 편하게 근무하자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현대차, SK, LG 등 대기업으로 번졌다. 최근엔 기업문화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은행·증권 등 금융권에서도 노타이 차림을 시행하고 있다.

공공기관 중에는 서울시에서 시작해 부산시, 경기도, 강원도, 수원시, 창원시 등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서울시와 수원시처럼 패션쇼를 열거나 시장·도지사 등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해 직원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일부 지방공무원 노조에서도 반바지 근무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이슈가 됐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전국의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에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으로 법정 변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충북공무원노동조합 게시판에 여름철 반바지 착용을 건의하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사진 충북공무원노조 캡처]

지난달 17일 충북공무원노동조합 게시판에 여름철 반바지 착용을 건의하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사진 충북공무원노조 캡처]

다만 불편한 시선, 과도한 노출, 여전히 폐쇄적인 직장문화 등은 논란거리다. 경기도의 한 여성 공무원은 “복장 규정을 자율화한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요즘엔 시원한 소재의 옷도 많은데 굳이 반바지를 입어야 하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7년차인 김모 대리는 “2년 전 한 선배가 금요일 오후 휴가를 앞두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왔다가 상사로부터 ‘너무 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후로 한 번도 반바지로 출근하는 동료를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업 2년차 직원인 정모씨도 “얼마 전 사내 인트라넷에 ‘폭염 기간 중 간편한 복장을 권장한다’는 게시글이 떴지만 반바지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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