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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공표죄 노건평도 피해자…"법원 판단 받아봐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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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택 울산지검장이 19일 울산 남구 울산지방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19일 울산 남구 울산지방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합니다"

수사 개시했던 송인택 전 검사장 "위법한 관행과 단절 필요"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죄' 수사 여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관련 수사를 지휘했던 송인택 변호사(전 울산지검 검사장)가 "이번 사건은 문무일 총장의 승인을 받고 시작했던 수사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 재개와 기소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19일 퇴직한 송 변호사는 울산지검장으로 재직 중이던 올해 1월 울산지방경찰청이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활동한 일반인 A씨를 구속하며 낸 보도자료가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된다며 담당 경찰관을 입건해 수사를 지휘했었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은 "국민의 알권리와 오랜 관행에 따라 이뤄진 공보 업무였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울산지검이 대검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수사 및 기소여부 판단을 요청했고 22일 오후 3시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해 15명의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가 사건의 수사 여부를 판단한다.

울산지검에선 황의수 차장검사가 위원회에 참석해 수사 배경과 필요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수사 여부를 판단하는 심의위원회가 수사에 동의해 울산지검이 해당 경찰관들을 기소한다면 사문화됐던 피의사실 공표죄를 적용돼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지는 첫 사례가 된다.

송인택 "피의사실 공표죄 적용해 위법한 관행 끊어내야" 

송 변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피의사실 공표죄는 엄연히 형법에 명시되어 있는 범죄 행위"라며 "이런 위법한 관행과 단절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형법 126조에 따르면 검·경 등 범죄수사에 관한 범죄수사를 행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 공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검찰이 이 조문을 적용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긴 적은 없다.

박기성 전 울산시장 비서실장이 지난 3월 25일 울산지방검찰청에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고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비서실장은 이날 황 청장과 울산지능범죄수사대 수사책임자 등을 피의사실공표, 명예훼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직선거법위반 등의 죄로 고발했다.[뉴스1]

박기성 전 울산시장 비서실장이 지난 3월 25일 울산지방검찰청에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고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전 비서실장은 이날 황 청장과 울산지능범죄수사대 수사책임자 등을 피의사실공표, 명예훼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직선거법위반 등의 죄로 고발했다.[뉴스1]

송 변호사는 이번 수사를 개시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울산지검 관할의 모든 경찰서에 기소 전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공문을 보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울산지방경찰청에서 관행에 따라 보도자료 배포를 강행해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송 변호사는 "일각에선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갈등을 언급하지만 이번 수사와는 상관이 없다"며 "피의자의 인권이 달린 문제라 수사를 개시한 것"이라 강조했다.

경찰 측"수사권조정 갈등에서 비롯된 무리한 수사"

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 울산지검과 울산경찰은 2016년부터 이른바 고래고기 사건으로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울산경찰청이 압수한 업자의 고래고기를 울산지검이 "일부 샘플 분석결과만으로 고래고기 전체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업자들에게 되돌려줬고, 이에 울산경찰이 반발하며 수사권 조정 갈등으로까지 비화됐다.

울산지검은 올해 피의사실공표죄 수사 뒤에도 김기현 전 울산시장 동생에 대한 변호사법 고발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을 강요미수와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측에선 피의사실공표죄 등 최근 울산지검의 경찰 관련 수사들이 고래고기 사건에서 비롯된 수사권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반발한다.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의 모습. 사진은 지난 3월 21일 대전경찰청장 재직 시절 기자회견 중인 황 청장. [연합뉴스]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의 모습. 사진은 지난 3월 21일 대전경찰청장 재직 시절 기자회견 중인 황 청장. [연합뉴스]

수사권조정에 강력한 입장을 밝혀왔던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울산지검 측에선 "수사권 조정과 검찰 수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송 변호사는 현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검찰을 상대로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피의사실 공표죄와 관련된 소송은 아니었지만 내용상으론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노건평씨, 지난해 검찰 수사결과 명예훼손 소송 승소  

노씨는 검찰이 2015년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관련 특별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성씨가 자신에게 특별사면 청탁을 했다고 밝힌 보도자료에 대해 "검찰에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걸어 지난해 5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팀장이 대전지검장을 맡고있던 문무일 현 검찰총장이다.

법원은 "노씨가 성 회장 특별사면 청탁과 관련해 3000만원을 받았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 명백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등 충분한 자료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증거까지 나열해 언론과 국민에게 노씨가 피의사실을 저질렀다고 믿게했다"고 원고 승소 이유를 설명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9)씨의 모습. 노씨는 지난해 국가에 제기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해 50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중앙포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9)씨의 모습. 노씨는 지난해 국가에 제기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해 50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중앙포토]

특별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런 대형 사건의 경우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공보 준칙이 있다"며 "피의사실 공표죄와는 상관이 없는 사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도 자신의 수사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가 많다"며 "언론도 함께 힘을 보태 이런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사실 공표로 수사나 재판을 받던 피고인들이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는 것이다.

"검·경이 함께 공보원칙 만들어가야" 지적도 

이날 오후 수사심의위원회에 참석할 황의수 울산지검 차장검사는 "파워포인트(PT)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해 수사 배경은 검경 갈등이 아닌 피의자의 인권 보호임을 강조할 계획"이라며 "위원들에게 위법한 관행과 단절할 필요성을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와 법조계에선 울산지검의 수사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 금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검찰 수사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은 "피의사실 공표는 금지되야 하지만 검·경 모두 오랜 관행처럼 해왔던 수사 공보를 검찰의 경찰 수사로 푸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수사 기관이 함께 논의해 새로운 공보 준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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