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자는 「버린자식」인가....|낡은장비에 전문의도 없어|보건의·간호사들이 보살펴|잊혀져가는 합천진료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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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광복 44주년-. 해방의 감격과는 달리 「한국의 히로시마(광도)로 불리는 경남합천의 원폭 피해주민 2천3백여명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제2차세계대전의 상흔으로 병마에 시달리고있다.
73년 일본 민간단체가 보낸 「속죄의 헌금」으로 이곳에 세운 우리나라 유일의 원폭진료소조차 당국의 무관심 속에 원자병을 전문적으로 진료할 전문 의사를 맞아들이지 못한채 결국 일반 보건소로 둔갑하고 말아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큰 것이다.
◇원폭진료소=경남합천에 원폭피해자 진료소가 세워진것은 73년12월.
일본의 민간단체 「핵병기(핵병기) 금지협회」가 1천9백만엔을 모아보내 현재의 합천읍합천리705에 연건평 1백58평규모의 2층슬라브를 건립, X선 촬영기등 2O여종의 의료기재를 들여와 경남도에 기증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원자병을 치료할 전문의를 구할수 없는데다 당국의 무관심으로 공중보건의만 배치하는데 그쳐 이 원폭피해자 진료소는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방치돼왔었다.
게다가 57년에 건립된 군보건소가 낡아 원폭피해자진료소를 보건소건물로 함께 사용하는데다 진료소 개설당시 들여온 X선촬영기등 의료기재도 낡아 원폭피해진료소는 간판만 걸어둔 셈이 되고 말았다.
합천군보건소측은 공중보건의 3명과 간호원 4명을 배치해 그동안 원폭진료소에서 매년 연인원 3천여명의 원폭피해자들을 치료, 지금까지 모두 3만여명을 진료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근본적인 원자병진료가 아닌 합병증이나 후유증등을 치료해주는데 그치고 있다.
이곳 공중보건의 정항진씨(29)는 『현재의 시설이나 의료진으로는 사실상 원자병의 실질적인 진료나 치료는 할수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원폭피해주민=45년 원폭이 투하될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고있던 한국인은 7만여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발표). 이중 4만여명은 직접 피해로 숨졌고 목숨을 건진 3만여명도 대부분 귀국후 원자병과 50여종의 합병증및 후유증으로 사망해 현재 생존해있는 피폭자는 전국에 6천여명인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가운데 합천지역에만 원폭피해자로 등록된 사람이 6백48명.
그러나 자녀들의 장래에 나쁜 영향을 주게될 것을 우려,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실제로 군내 원폭피해자는 2천3백여명인것으로 보고 있다.
합천읍내곡리 안분임할머니(76)는 일가족 7명이 모두 원폭피해자. 남편과 딸이 해방 이듬해 귀국후 숨지고 당시 5살이던 딸 이재임씨(49)는 무너진 집더미에 깔려 평생 불구가 됐으며 나머지 가족들도 손·발이 떨리고 위장장애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합천읍 합천리 정백중씨(54·여)는 10살때 히로시마에서 피폭후 그동안 별다른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5년전부터 전신마비증상과 함께 파킨슨병을 앓아 지난6월 한달간 진주에 있는 경상대부속법원에서 입원치료를 하고도 완치가 안돼 신음하고 있다.
◇문제점=원폭피해자들에대한 당국의 지원은 원폭피해자진료소에서 실시하는 무료 진료이외엔 사실상 지원이 거의 없다. 원폭피해자가 일반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적십자사를 통해 치료비의 50%를 지원키로 돼있으나 치료비 지급후 영수증을 첨부해 원폭피해자협회와 적십자사를 거쳐야하는등 절차가 까다롭고 홍보가 안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 81년 한일 양국이 원폭피해자진료협정을 맺은후 지금까지 4백여명이 일본 히로시마적십자병원에서 무료진료를 받았으나 이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원폭피해자들은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전쟁의 희생물이 된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만성질환 치료는 물론 생계보장, 합병증·후유증으로 숨진 사람들에 대한 보상도 해줘야 할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합천=허상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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