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도루왕 … 달리는 야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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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1년 프로 초년병 시절 전준호(37.현대.당시 롯데)는'독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에 유난히 반짝이는 눈빛, 날쌘 몸놀림으로 베이스를 휘젓는 모습은 뱀을 닮았고, 강인한 정신력은 '독종'이라는 말을 들을 만했다. 전준호의 '독기 품은 발'은 상대팀에는 치명적이었다. 그의 빠른 발을 막지 못하는 팀은 늘 곤경에 빠졌다. 데뷔 이듬해 롯데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고, 97년 현대로 옮기고 나서는 네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98.2000.2003.2004년)을 팀에 안겼다. 그때마다 그의 발은 상대팀의 빈 곳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였다.

개인 기록에서도 전준호의 발은 눈부셨다. 93년(75개)과 95년(69개), 2004년(53개) 각각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92년부터 2004년까지 13년 연속 도루 10걸에 이름을 올렸다. 또 2001년 7월 11일 수원 롯데전에서 최다도루 기록(372개)을 세운 뒤 지난해 프로 최초로 500도루 고지를 밟았으며, 11일 현재 512도루로 매일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전준호는 9일 광주 KIA전에서 시즌 10호 도루에 성공, 데뷔 후 16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 마디로 멈출 줄 모르는 질주 본능이다. 16년 동안 프로야구선수로 뛰기도 어려운데 16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성공시켜 '타격, 수비에 슬럼프는 있어도 발(뛰는 야구)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야구계 속설을 그대로 보여줬다.

전준호는 11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7회 초 적시타를 때려 1루에 출루한 뒤 후속 송지만의 좌전안타 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3루까지 파고드는 질주본능을 또 한번 보여줬다. 11일 현재 타율 0.301(규정타석 미달).11도루.17득점을 기록 중이다. 전준호는 "16년 동안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한편 KIA는 12일 벌어진 광주경기에서 LG를 12-1로 대파하고 2연승했다. 현대-두산, 삼성-SK, 한화-롯데 경기는 비로 취소됐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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