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는 우리가 하루아침에 (일본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부품 소재에 대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해외 인수·합병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규제 조치 때문에 반도체 핵심 소재와 부품 확보에 비상이 걸린 국면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15년 전인 2004년 8월 당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조찬 독대 자리에서 국내 부품 산업의 높은 대일 의존도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건의한 내용이다.
그가 바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다. 김 차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전격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미 외교전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김 차장은 백악관과 상·하원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김 차장의 대미 외교전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부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란 것이다.
김 차장은 자신의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당시 한·일 FTA 협상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 출신인 그는 세계무역기구(WTO) 수석변호사를 거쳐 2003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자리에 통상전문가로 영입됐다.
김 차장은 당시 일본이 한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산업 구조상 우리가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피해를 우려한 분야가 부품 소재 분야였다.
김 차장은 저서에서 “부품 소재 분야는 특히 불안했다. 일본은 전 세계 부품 소재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도 일본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한국산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부품 소재의 평균 50% 정도가 일제이며, 이는 휴대전화 한 대의 약 60%에 해당하는 가치였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같은 해 6월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노 전 대통령에게 한·일 FTA 협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29쪽 분량의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부품 소재 분야의 경쟁력이 약해 보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결국 한·일 FTA 협상은 이듬해 중단됐다.
15년 전 김 차장이 우려했던 상황은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위해 주요 경제계 인사를 초청한 간담회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기업인들은 부품 국산화에 대한 정부 의지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의 정부 지원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는 단기간 내 국내 부품·소재의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인수·합병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최대한 정부가 뒷받침할 테니 대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 기업 간 공동기술 개발, 대·중소기업 간 부품기술 국산화 협력 확대 등을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