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만족 위해 18억 돌려막기"…'청년버핏'에 징역 5년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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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8월 2일 박씨가 자신의 모교에 향후 5년간 13억5000만원을 기탁하기로 약정하고 있는 모습. 그는 11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중앙포토]

지난 2017년 8월 2일 박씨가 자신의 모교에 향후 5년간 13억5000만원을 기탁하기로 약정하고 있는 모습. 그는 11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중앙포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수백억원 자산가가 된 것으로 알려지며 이른바 ‘청년 워런버핏’으로 불렸던 박모(33)씨가 11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주식으로 수백억 자산가 됐다고 알려지며 유명해진 대구 박모씨 #거짓으로 투자자 모집해 사적으로 쓴 혐의 구속기소…11일 재판 #법원 "상당 부분 기부했지만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투자 유치"

이날 오전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33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박씨는 베이지색 수인복을 입은 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월부터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된 상태다. 법정 방청석엔 박씨에게 투자를 한 피해자들 3~4명이 앉아 한숨을 연거푸 내쉬고 있었다.

재판을 맡은 서부지원 제1형사부는 “피고인(박씨)이 투자받은 돈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학사업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여 피해가 발생했고 목적이 아무리 도덕적이라고 해도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었고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주식으로 큰 수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기 위해 많은 부를 축적한 것처럼 행세해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속였다. 일부는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해 개인의 이익과 만족감을 위해 기부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 점, 전과가 없는 점, 피해자 중 1명과는 합의한 점, 기부를 받은 사람들이 선처를 바라고 있는 점 등이 유리한 참작 사유지만, 돌려막기식으로 유치한 피해 금액 대부분이 변제되지 못했고 피해자들이 엄벌을 원하고 있는 점을 반영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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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1월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씨는 피해자 3명에게 받은 투자금 약 15억8000만원을 아직 변제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총 18억여원의 투자금을 부당하게 유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2013년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 거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대 대학생 신분으로 수억원의 ‘통 큰’ 기부를 하는 청년에게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후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하면서 10년 만에 거액의 수익을 올려 ‘천재 투자가’란 별명을 얻었다. 주식으로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등 꾸준히 이웃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청년 기부왕’이라는 명예도 차지했다.

박씨는 2013년 1억원 장학금 기부에 이어 2015년에도 재학 중인 대학에 4억5000만원(5년 약정)을 기부했다. 같은 해 7월엔 대학생 신분으로는 최초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듬해엔 미국 포브스지의 ‘2016 아시아 기부 영웅’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러 기관에서 강연도 했다. 2017년 8월 모교에 13억5000만원을 5년간 나눠 내기로 하는 등 기부는 계속됐다.

그러다 그의 투자 수익금이 과장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를 부인하던 박씨는 “지금까지 번 돈이 14억원 정도”라면서 주식 수익 규모가 과장된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해 12월엔 한 투자자가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를 고소한 A씨는 고소장을 통해 “2016년 30% 투자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13억9000여만원을 박씨가 여러 차례에 나눠 받아가고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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