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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능력 평가받는 시기"···日보복에 비상체제 선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사실상 ‘비상체제’를 선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10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30개 기업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와 4개 경제단체 대표를 청와대로 긴급 초청한 간담회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비상한 각오로 임한다’, ‘전례 없는 비상 상황’ 등 평소 잘 쓰지 않던 강한 용어를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번 사안을 무역이 아닌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아무 근거 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금수 조치 품목이 북한의 화학 무기제조를 위해 흘러들어간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간담회를 앞두고 핵심 참모들에게 “지금이 우리 정부의 능력이 평가되는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 해결에 사실상 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는 '승부처'라는 절박한 인식의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제재가 시작된 지난 4일 해당 사안을 NSC(국가안전보장 회의)의 정식 안건으로 올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책실뿐 아니라 안보실, 비서실 등을 비롯한 청와대를 비롯해 범정부, 정치권, 민간까지 국가의 총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이날 모두발언에서도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일본도)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재차 강도를 높여 일본의 제재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제 공조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며 당장의 해법으로 외교적 노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은 문 대통령의 공식 입장발표와 외교적 압박에도 오히려 추가 제재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눈 뒤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눈 뒤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 대통령도 장기전을 각오했다. 그는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춰 단기적 대책과 근본적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한다”며 민관 합동기구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단기 대책’이라며 수입처의 다변화와 국내 생산 확대, 해외 원천기술의 도입 등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소재 개발의)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필요할 경우 이를 최소화하고 기술개발과 실증, 공정테스트 등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국회의 협조를 구해 이번 추경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단기대책이라고 했지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중기대책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근본적 대책은 주력산업의 핵심기술, 핵심부품, 소재, 장비 등의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부품ㆍ소재와 장비산업 육성과 국산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말했다. 기업에게는 부품ㆍ소재의 공동개발과 구매를 비롯해 대기업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 확대를 당부했다. 이 역시 언제 실현될지 장담할 수 없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기업인들도 단기·장기적 조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민간 차원에서도 총력을 다해 (일본을) 설득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장의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기업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정부의 대책 미흡에 대해 불만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없었다”고 답했다. 다만 기업들은 수입선 다변화와 부품의 국산화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또 문 대통령이 사실상 장기대책에 치중하면서 일본이 사실상 예고하고 있는 추가 제재에 대한 논의는 물론, 당장의 피해 상황 집계나 기업들의 구체적 대응계획 등에 대한 논의까지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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