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 선진국 "돈놀이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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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금융시장이 갈수록 선진제국들끼리만의 돈놀이 마당이 되어가고 있다.
약 2조3천억 달러규모 (국제결제은행의 88년9월말 현재 각은행대외순자산 기준추계)에 이르는 거대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때 무시못할 고객이였던 개도국들은 이제 완전히 찬밥신세로 밀려났다. 그대신 선진국들끼리의 머니게임이갈수록 뜨거워지면서 돈놀이마당의 주도권 다툼도 치열해져 동경역외금융시장 (JOM) 이 지난해 처음으로 뉴욕역외금융시장 (IBF)의 규모를 능가하는등 시장 판도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가강 큰 요인이 지난 85년을 기점으로 미국이 빚에 쏘들리는 신세가 된 반면 일본이 세계의 금융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데 있음은 물론이다.
국제굼융시장의 증권화 현상도 선진국간의 활발한 돈놀이에서 나타난 것이다.
중남미에 호되게 물려 돌아간 사실도 있거니와, 또 한국과 같은 우수고객이 채무국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한 형편에서, 국제잉여 자본들이 이제는 전처럼 단순한 대출로 운용되기보다는 머니 게임이 가능한 증권을 매개수단으로 하여 이동하고 있는것이다.
실제로 국제금융시징에서의 채권에 의한 자금조달비중은 81년만 해도 26.3%에 지나지 않았으나 87년에는 80.6%로 급신장했다.
국제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다투는 선진국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미국이 유럽시장에서만 놀려고 드는 자국의 자본을 도로 끌어들이기 위해 뉴욕에다 역외금융시장인 IBF(International Banking Facilities)를 차린것은 지난 81년이었다.
국제자본이 따로 놀 수 있는 별도의 시장을 차려준 것인데, 그때까지는 런던을 중심으로한 유럽의 국제금융시장이 거의 독무대이다시피 세계시장을 주도했고 그밖에는 홍콩과 싱가포르시장 정도가 선진국 자본의 아시아진출을 위한 중간거점 역할을 하기위해 차려져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지난 86년12월 일본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노리고 동경역외금융시장 (JOM)을 열면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장세를 먹어갔다.
영국중앙은행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JOM에서 조달된 국제자본은 3백72억 달러로 IBF에서 조달된 3백9억달러를 능가했다.
개장 2년만에 일본의 역외금융시장 규모가 뉴욕을 눌러버린 것이다.
역외금융시장만이 아닌 전체금융시장을 놓고보면 일본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제결제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88년 1∼9월간 미국소재은행들의 대외채권은 3백58억달러, 대외채무는 3백58억달러가 늘었다.
같은기간 일본 소재은행들의 대외채권은 1천4백82억달러, 대외채무는 1천7백46억 달러씩 증가, 미국은 물론 유럽소재은행들의 자금흐름 규모조차 뒤로제쳤다.
일본이 세계 제1의 돈주인이 된것만이 아니라, 세계 제1의 돈놀이 시장을 차려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변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많다.
머니 게임을 통해 한푼이라도 더싼 자금을 조달하고 한푼이라도 더많은 운용수익을 노리는 것이 일반화된 마당에 우리는 아직도 통화관리나 외환관리의 낡은 틀에 얽매어 국제금융시장 진출의 발목을 잡히는 일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력상 독자적인 국제금융시장을 차려놓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지난 6월말 현재 외화자산이 약 3백20억 달러쯤되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금융선물거래등에 능통한 전문가 하나 변변히 키우지 못하고 있는것은 문제가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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