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경제의 활력이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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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의 흐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10일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6월중 경제 동향에 따르면 산업 생산·투자·제조업 가동률이 일제히 뒷걸음질치고 수출도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하반기 경기를 예고해 주는 경기 선행 지수나 수출 신용장 내도액도 하강 곡선을 그려 앞으로의 전망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노동부가 조사한 고용 전망을 보면 조사 대상 업체의 69%가 추가 고용이 불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13%는 현재 고용하고 있는 상근 근로자의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밝힘으로써 하반기 취업의 문이 좁아질 것을 예고했다.
올들어 국내 경제는 어느 한때 밝은 국면을 보인 일이 없고, 그런 만큼 6월이라고 해서 경기가 갑자기 크게 좋아진다거나 하반기에는 급상승 국면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노사 분규나 원화 절상 추세가 수그러지면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기대를 가져온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가 6월의 각종 경제 지표에 접하면서 사태를 특히 심각하게 보는 것은 그동안 경기 침체의 주 요인으로 지목돼온 노사 분규나 원화 절상이 6월 들어 눈에 띄게 진정되고 소강상태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여건이 다소 호전됐다고 그것이 바로 경제 활동에 반영되기는 어려우며 거기에는 다소 시차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여건이 좋아지고 있는데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면 그것은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정상적인 복원력을 상실하고 구조적 불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불길한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지금처럼 안이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관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시점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의 현실 인식과 대응 자세다.
조순 부총리는 6월 경제 동향이 발표되기 하루 전에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오는 10월까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뒤 대책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들린다.
경제 운용 책임자의 그 같은 여유 있는 자세에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경제 정책이라는 것이 한번 시기를 놓치고 처방이 잘못되면 국가 경제의 후퇴를 가져오고 그 여파가 온 국민의 생활에 직결될 뿐 아니라 그 회복에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이 80년대 초 고 임금 정책으로 산업 구조 조정을 도모했다가 수 삼년에 걸친 경제 위기를 초래, 이제 겨우 회복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한나라 경제의 성쇠를 좌우하는 것은 그 나라 민간 경제가 활력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으며 그 주역이 기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싱가포르의 실패도 바로 기업 정책의 오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국내 기업은 3년에 걸친 노사 분규와 원화 절상으로 기진 맥진한 상태다. 그 위에 정부는 여신 규제, 고금리로 기업의 의욕을 꺾고 부담을 늘리는 시행착오를 적지 않게 되풀이해왔다.
정부는 이제야말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정밀 분석하고 기업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처방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신중과 실기는 초기에는 그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결과는 가공스러운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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