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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주여성의 비명에 우리는 얼마나 귀 기울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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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이 두 살배기 아들 앞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당한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SNS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한국인 남편은 “여기 베트남 아니라고”라는 폭언과 함께 부인을 마구 때렸다. 어린 아들이 “엄마”라고 울부짖는데도 주먹질과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베트남 출신 여성은 “너무 무서워” 등의 서툰 한국말로 괴로워하면서도 우는 아들을 껴안아 달랬다. 문제의 동영상을 SNS에 올린 사람은 베트남어로 “한국 정말 미쳤다”고 적었다고 한다. 문제의 남편이 긴급체포됐지만 ‘폭행의 일상화’를 짐작게 하는 장면에 시민들은 분노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주여성의 인권 침해 상황은 공공연한 사회 문제가 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의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여성을 상대로 한 같은 조사(2016년 여성가족부) 결과(12.1%)의 약 3.5배다. “때리지 마세요”가 결혼 이주여성들의 일상어가 됐다는 말도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번 사건의 피해 여성은 "남편에게 하도 맞아 몰래 (동영상을) 찍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난 10년간 약 20명의 이주여성이 남편의 무차별 폭력에 목숨까지 잃었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사건이 불거져도 한국인 남성에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오히려 피해자에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곤 했다. 지난 2월엔 한국인과 결혼한 언니의 아이를 돌보러 온 캄보디아 여성이 형부에게 1년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와 지역 사회에서 논란이 됐다. 법원은 “피해자가 소리치지 않았다”는 등의 무죄 사유를 밝혔으나 여성단체들은 “이혼이 두려운 이주여성과 그 가족의 현실을 도외시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 100명 중 4명이 외국인인 시대다. 서울의 일부 구(區)는 외국인 비율이 10%를 넘었다. 결혼 이주여성은 2017년 기준 13만여 명(전체 결혼이민 15만5000여 명)이며 베트남인은 4만2000여 명(27%)으로 중국(5만7000여 명, 37%) 다음이다. 이제 어엿한 이웃의 자리를 차지한 이들에 대한 학대 범죄에 강력한 처벌로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일본에선 국가와 기업이 이주노동자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정착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주 여성의 인격이 말살되는 차별과 억울함을 막고 그들을 보듬고 껴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웃의 불행은 결국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