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식상하다’는 일본식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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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와리바시’ ‘벤또’ ‘다마네기’. 이제 잘 쓰이지 않는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식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일본식 표현을 쓰지 말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회용 젓가락’ ‘도시락’ ‘양파’가 이들 대신 쓰이고 있다.

이렇게 일본식 표현이란 것을 알고 나면 의식적으로 우리말 표현으로 바꿔 쓰고자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인 줄 알고 쓰는 일본식 표현이 적지 않다.

여기서 문제 하나. “좋은 노래지만 자꾸 들으니 식상하다”는 말에는 일본식 표현이 들어 있을까, 아닐까? 여기에 일본식 표현이 들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식상하다’가 일본식 표현이다. 어떤 일이나 사물·음식 등이 자꾸 되풀이돼 질릴 때 이처럼 ‘식상하다’는 말을 쓰곤 한다.

‘식상하다’는 순우리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식 한자어 ‘쇼쿠쇼(食傷, しょくしょう)’를 우리 한자음대로 읽으면서 만들어진 단어다. “좋은 노래지만 자꾸 들으니 질린다”와 같이 ‘물리다’ ‘질리다’ ‘싫증 나다’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이 밖에도 ‘고참’ ‘땡깡’ ‘기스’ 등도 순우리말로 착각하기 쉬운 일본식 표현이다.  ‘고참’은 일본식 한자어 ‘고산(古參, こさん)’을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땡깡’은 간질병을 뜻하는 일본어 ‘てんかん’을 그대로 가져온 말이고, ‘기스’는 상처·비밀을 의미하는 ‘きず’를 읽은 것이다. 각각 ‘선임자’ ‘생떼’ ‘흠집, 상처’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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