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曰] 너무 늦었다고? 한선태를 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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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호 30면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한계를 뛰어넘는 선수가 태어났습니다. 한선태입니다.”

프로야구 첫 비선수 출신 1군서 맹활약 #“늦어서 안 돼”라는 말 가장 듣기 싫었다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LG 트윈스 새내기 투수 한선태(25)입니다. 제가 지난달 25일 잠실 SK와의 경기에서 프로야구 38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선수 출신 1군 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을 때, 중계 캐스터(SPOTV 이준혁)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선·태라는 운(韻)을 맞춘 멘트라지요.

저는 그날을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겁니다. 3-7로 뒤진 8회 초 코치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리그 1위 SK의 거포 이재원 선수를 상대로 던진 첫 공은 포수도 받지 못한 폭투였습니다. 그리고 안타를 맞았습니다. 진땀이 났습니다. 다행히 다음 타자를 병살 처리했고, 땅볼로 이닝을 끝냈습니다. 이튿날도 1이닝 무실점, 6월 29일 NC전에서는 삼자범퇴로 1이닝을 책임졌죠. 현재 4경기 4이닝 무실점, 자책점 ‘0’입니다.

저는 초-중-고 야구부를 전혀 거치지 않은 ‘비선출(비선수 출신)’입니다. 중3 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잠수함 투수 임창용을 보고 야구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다가 고교 야구부에 지원했지만 어림 없었죠.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테스트에도 낙방했고, 수색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습니다. 투구 폼을 바꾼 뒤 구속이 140㎞ 중반까지 나와 자신감이 생겼죠.

프로에 가고 싶었으나 ‘비선수 출신은 드래프트에 지원할 수 없다’는 KBO 규정이 있더라고요.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 진정을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뛰는 동안 KBO 규정이 바뀌었고, 지난해 9월 드래프트에서 LG에 마지막 10순위(전체 95순위)로 지명됐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사회인 야구팀에서 운동할 때 “넌 너무 늦어서 안 돼”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주위 형들이 “가망 없는데 왜 하냐”는 말을 했습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반대하는 거잖아요.

인권위원회에는 제가 직접 찾아가서 청원을 넣었습니다. 내가 터무니없는 꿈 꾸는 게 아니고 몇몇 프로팀에서 관심 있다고 들었는데 ‘비선출’이라 안 된다고 하니 어떤 법 때문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조사관 배정하고 내용 파악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고 했어요. 안될 것 같아서 일본으로 갔는데 그 동안에 규정이 바뀐 거죠. 제가 뭔가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가능하면 일본어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야구가 안되면 일본어라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셔틀런(왕복달리기) 훈련 중 힘들 때면 ‘하면 된다’의 일본어인 “야래바 데키루(やれば できる)”를 쉴 새 없이 중얼거렸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많이 본 게 일본어 듣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 임무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입되는 ‘추격조’입니다. 앞으로는 동점이나 1점 차에서 나갈 수도 있을 텐데 그때 투구 밸런스와 멘탈을 유지할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면 홀드(리드 상황을 지키는 것)나 세이브(승리를 지키는 것) 기록 같은 ‘계급장’을 달 수 있겠죠.

돈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인데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돈 때문에 많이 울었죠. 지금 받는 연봉 2700만원은 프로에서 최저 연봉이라고 하지만 제게는 너무나 감사한 금액입니다. 돈을 좀 더 벌면 부모님께 집을 사 드리고 싶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늦었어” “안 돼”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남들이 내 인생 살아주는 게 아니잖아. 내가 선택한 길을 가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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