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회담 히말라야 타임스 보도까지 소개한 노동신문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5일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을 통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열린 북ㆍ미 정상회담을 집중조명했다. 북한은 회담 다음날인 지난 1일 3개면을 통해 30여장의 사진과 기사를 통해 ‘성과’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다 회담 5일 뒤 다시 거론한 것이다. 지난 1일 회담이 열렸다는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것과 달리 이 날은 “역사적 상봉(판문점회담)이 전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국제 언론들의 보도 동향을 실은게 차이다.
노동신문은 미국 CNN방송과 프랑스 AFP, 중국 신화, 러시아 타스 통신이 ‘상봉’ 소식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케냐와 불가리아, 라오스의 언론들과 파시스탄의 히말라야 타임스 등 판문점 소식을 보도한 언론사 70여개를 거명했다. “외국의 한 언론”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하던 기존의 행태와는 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진행한 판문점회담을 해외 언론들이 '역사적 사변'으로 소개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5일 대대적으로 전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진행한 판문점회담을 해외 언론들이 '역사적 사변'으로 소개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5일 대대적으로 전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이와 관련, 북한이 판문점 정상회담을 부각함으로써 하노이 회담 결렬의 충격파를 지우고, 동시에 상처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치유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ㆍ미 2차 회담을 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준비가 안됐다”는 이유로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선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북한에선 “수령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다”는 ‘수령의 무오류성’을 주민들에게 강조해 왔는데, 수령이 참여한 회담이 깨지면서 김 위원장은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한동안 공개활동을 중단한 채 체제 정비에 주력했다. 동시에 최근 미국, 중국 최고지도자와 친서 교환 및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북한 당국은 이를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하며 김 위원장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나선 모양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일반국가에서 정상회담은 외교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지만 북한에선 ‘해외의 누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 뵈었다’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알린다”며 “특히 이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이어 김 위원장을 만난 걸 두고는 ‘세계 최고 강대국 지도자들이 원수님(김정은)을 찾아왔다’는 식으로 하노이 회담에서 구겨진 체면을 세우는데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당(선전선동부)에서 치밀한 계산 뒤에 노동신문에 뭔가를 싣는다”며 “노동신문에 실렸다는 건 당적으로 선전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회담 닷새뒤 다른 나라 언론 보도 내용을 다룸으로써 전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 하노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김 위원장에게 보낸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 공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차례 친서를 주고 받았지만 북한 매체들이 친서 소식을 전한건 지난달 23일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생일 축하 친서에 대한 응답 차원이었다고 설명(지난달 24일)했지만, 북한 당국은 달리 해석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 치유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주민들에 대한 선전이 강화하는 상황이 하반기 공세적인 외교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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