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수입선 다변화’가 최선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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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에 나섰다.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내렸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산업부 장관이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발등의 불을 끄려면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 전문가들도 “기술 격차가 워낙 커서 당장 대체 수입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언급한 ‘수입선’이란 용어는 ‘수입국’ ‘수입처’ 등으로 고쳐 쓰는 게 좋다. 이참에 일본어투 한자어도 적극적으로 가려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어순화자료집에도 올라 있고 행정용어에서도 밀려난 지 오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말 중 하나다. “수입국 다변화” “대체 수입처”라고 하는 게 더 알아듣기도 쉽다.

‘수입선’의 한자가 왜 문제가 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대개 다른 나라로부터 상품 등을 국내로 사들인다는 뜻의 단어 ‘수입(輸入)’에 ‘선(線)’이란 한자가 결합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입선의 한자는 ‘輸入線’이 아니라 ‘輸入先’이다. 이때의 ‘선(先,さき)’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그 일을 행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일본어식 접사다. 주로 ‘먼저, 앞선’이란 의미로 ‘선(先)’을 사용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한자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거래선, 구입선 등도 거래처, 구입처로 바꿔 쓰는 게 바람직하다.

‘고(高, たか)’도 일본어식 접사다. 우리는 ‘고(高)’를 주로 높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액수·분량의 의미는 없다. 일본어투 한자어인 ‘잔고(殘高)’ 역시 ‘잔액’ ‘잔량’으로 쓰는 게 좋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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