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꼬였다"···공수처법 대신 선거법 택한 민주당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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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스텝이 좀 꼬여버렸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다루는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에 넘기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본회의 관련 원포인트 합의문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본회의 관련 원포인트 합의문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토로가 나오는 배경은 이렇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치개혁특위,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을 원내 1, 2당이 하나씩 나눠 맡기로 합의했다. 선택 우선권은 민주당이 갖기로 했다. 정개특위엔 민주평화당·정의당이 강한 의지를 보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이 걸려있다. 이에 비해 사개특위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청와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공수처법이 걸려 있다. 민주당이 한국당을 배제한 채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태운 핵심 두 법안이다. 민주당이 그런데 사개특위원장이 아닌 정개특위원장을 맡기로 했다니 '스텝' 얘기가 나온 것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사실 공수처법을 관철하기 위해 선거법도 패스트트랙에 같이 태운 것으로 이해하고, 선거법 내용에 아쉬운 점이 있어도 표출하지 않은 의원들이 많다”며 “결과적으로 주객이 전도돼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선 일찌감치 정개특위원장을 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국회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협상 단계에서부터 정개특위를 해야 한다는 방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합의문에도 원내 1당이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라며 “다만 내부적으로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해 어느 한쪽을 하겠다고 공표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말한 설득의 대상은 이른바 공수처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수처법 강경파’다. 이들은 사개특위 위원장을 한국당이 가져갈 경우 또 어떤 방식으로 제동을 걸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한 재선 의원은 “당 지지층을 생각하면 사개특위를 맡아서 공수처법 관철 의지를 피력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민주당엔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의 공조 체제가 공고해야 하는데,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선거법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포함한 정의당은 교섭단체 간의 협상 결과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선거법 개혁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시간상으로도 선거법이 공수처법보다 쫓기는 상황이다. 국회법 85조 2항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 180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90일, 본회의 부의 후 상정까지 60일 등 국회 통과에 최장 330일이 걸린다. 공수처법은 법사위가 소관 상임위라 체계·자구 심사 90일을 생략할 가능성이 있지만, 선거법은 반드시 법사위를 거쳐야 해서 최장 3개월이 더 걸린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한 민주당 의원은 “원 구성 협상 때 법사위, 예결위를 다 한국당에 넘겨주면서 정개특위, 사개특위를 범여권이 가져온 건데 추경 때문에 양보만 거듭하는 상황이 됐다”며 “한국당이 예결위원장 선출을 미루며 시간 끌면 추경도 마냥 늦어질 텐데 소득이 없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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