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이 찾는 구례 왕벚나무…한 달 일찍 시든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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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당시 구례 왕벚나무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개화 당시 구례 왕벚나무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해마다 9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명소가 된 전남 구례군 왕벚나무 가로수가 ‘구멍병’ 감염으로 인해 잎이 한 달가량 빨리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2017년 10월부터 최근까지 구례군의 왕벚나무 가로수의 조기낙엽(잎이 빨리 짐) 현상을 연구한 결과, 조기낙엽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구멍병’ 감염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2일 밝혔다.

구례군에는 봄꽃 축제 때 매년 약 90만 명의 관광객이 벚꽃 등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왕벚나무는 특히 벚나무 중에서도 꽃이 크고 많아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왕벚나무의 잎이 빨리 지면서 9월에도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 지역 현안의 문제로까지 대두하고 있다.

이에 국립생태원 연구진은 구례군의 조기낙엽 진단을 위해 왕벚나무로 유명하고 단풍 시기가 구례군과 유사한 제주도를 선정하고, 지난해 두 지역의 잎이 지는 시기, 조기낙엽 진단 및 원인 규명 등을 조사했다.

제주보다 한 달 빨리 잎 떨어져 

지난해 10월 잎이 진 구례 왕벚나무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지난해 10월 잎이 진 구례 왕벚나무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조사 결과, 낙엽 비율이 90% 이상인 시기가 구례 지역이 제주도보다 약 한 달 정도 빨랐다. 조기낙엽은 정상적인 시기보다 잎이 일찍 떨어지는 것을 말하며, 과일나무를 기준으로 조기낙엽이 발생하면 이듬해 꽃과 열매를 맺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왕벚나무 잎이 빨리 질수록 가지당 꽃눈 수와 가지 생장량이 이듬해에 절반가량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조기낙엽 비율이 낮은 개체의 구례군 왕벚나무 꽃눈 수는 가지당 15개였다. 하지만, 4주가량 잎이 빨리진 개체는 이듬해 꽃눈 수가 절반가량 줄어든 4~7개로 나타났다. 가지 생장량 역시 평균 26㎝에서 12~20㎝로 줄었다.

“잎에 구멍 뚫리는 구멍병 때문”

구멍병에 감염되면 잎에 구멍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국립생태원 제공]

구멍병에 감염되면 잎에 구멍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국립생태원 제공]

연구진은 조기 낙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구례군 왕벚나무가 ‘구멍병’에 감염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멍병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북미 대류의 벚나무, 복숭아나무 등 과일나무류에서 주로 발생한다. 곰팡이 또는 세균 때문에 잎에 구멍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국립생태원과 구례군은 지난해 5월부터 3개월간 구례군 광의교-용방초등학교 3㎞ 구간 내 왕벚나무 총 94그루를 대상으로 ‘구멍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친환경 살충제를 살포했고, 조기낙엽이 2주 정도 지연되는 것을 확인했다. 구멍병을 치료하면 왕벚나무 잎이 빨리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이에 따라 조기낙엽 발생 해결을 위한 추가 실험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수립된 최적관리방법은 비슷한 문제가 있는 다른 지자체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관리 안내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현재 구례 외에도 군산과 서천 지역의 왕벚나무에서도 조기 낙엽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용목 국립생태원 원장은 “국립생태원은 지역 생태 현안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와 협업의 선순환 고리를 이어갈 것”이라며 “생태연구의 가치를 확산하며 지속해서 생태연구를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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