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낸 교통사고, 숨기고 보험 청구해도 딱 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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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후 일반사고인 척 가장해 보험금을 편취한 피의자 A씨의 사고 영상. [서울 서부경찰서 제공]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후 일반사고인 척 가장해 보험금을 편취한 피의자 A씨의 사고 영상. [서울 서부경찰서 제공]

2015년 5월17일 오전 5시40분쯤 박모(36)씨는 술을 마신 후 운전하다 서울 성북구 종암로에서 인도에 놓인 분리대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다. 당시 박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07%였다. 혈중알코올농도 0.10%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되는 당시 기준(현행 0.08%)에 따라 박씨의 면허는 취소됐다.

이 사고로 박씨 차량 앞부분과 분리대가 심하게 파손됐다. 하지만 보험사에는 운전자의 음주 사고로 인한 차량 파손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규정이 있다. 사고 현장에서 보험사 직원을 부르지 않았던 박씨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일반 사고로 가장해 보험금을 청구했으며 차 손해비와 분리대 파손비까지 포함 총 97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챙겼다.

서울서부경찰서는 이런 방식으로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사고를 낸 후 일반 사고처럼 가장해 보험금을 타낸 박씨 등 106명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 현장에 보험사를 부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없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는 점을 노렸다. 이들은 보험금 청구를 할 당시 ‘음주를 했습니까’나 ‘무면허 상태로 운전했습니까’ 등의 질문에 거짓으로 답변했다.

또한 개인정보 제공을 동의하지 않으면 무면허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점도 이용했다. 보험금을 청구할 때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하면 청구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보험사가 개인의 면허 상태를 조회할 수 없는 구조다. 이를 이용해 이들은 이미 취소된 면허번호를 보험사 측에 알렸다.

'제2윤창호법' 시행 첫 날인 지난달 25일 새벽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0시부터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에 따라 음주운전자에 대한 면허정지는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는 0.10%에서 0.08%로 강화됐다. [뉴스1]

'제2윤창호법' 시행 첫 날인 지난달 25일 새벽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0시부터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에 따라 음주운전자에 대한 면허정지는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는 0.10%에서 0.08%로 강화됐다. [뉴스1]

하지만 이들의 꼼수는 결국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음주·무면허 운전을 적발한 데이터를 보험료율을 관리하는 보험개발원에 통보한다.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보험개발원 데이터와 보험사의 보험 청구·지급 데이터를 분석해 사기로 의심되는 127명을 서부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은 착오접수 등 21명을 제외한 후 106명에 대한 혐의를 확인했다. 가장 편취금액이 큰 경우는 지난해 1월 사고로 2100만원을 타낸 조모(45)씨였다.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 임경찬 수석조사역은 “술을 먹었다거나 면허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도 보험을 타갈 수 있는 구조”라며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모니터링해 수사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는 “이들은 사고 당시 음주나 무면허 등에 대해서 벌금을 납부한 상황”이라며 “이미 처벌이 된 동일 범죄로 2차 처벌은 할 수 없지만, 보험사가 피해를 본 상황이기에 보험금을 모두 환수 조치했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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