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수화가 자유푸 개인전 '두터운' 정신 화폭서 묻어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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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국의 산수화가 자유푸(64.賈又福)는 화가라기보다 시인이나 사상가로 다가온다. 그림도 좋지만 그가 남긴 글과 화론(畵論)이 어질고 깊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란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검은 가운데 검은 것이 가장 묘한 것이다'라는 말이 뜻하는 세계를 작품에 옮겨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 했다.

자유푸의 개인전 '시인가 노래인가'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 들어서면 그가 말한 '검은 가운데 검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1964년부터 40년 넘게 그리고 있는 중국 타이항 산(太行山.사진)의 웅장 기묘함이 자유푸의 온몸과 정신을 거쳐 '묘하게' 드러난다. 화가는 "나에게 타이항 산은 굽이치는 산봉우리 중에서 가장 깊고 험준한 산세를 지녔으며, 그 붉은 바위는 마치 피 흘리는 힘센 장사의 혈기 같고, 포효하는 거친 바람은 연(燕)과 조(趙)나라의 비분강개한 노래와 같다"고 쓴다.

자유푸는 타이항 산을 그렸다기보다는 우주와 자신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정신으로 그렸다. 그를 현대 중국화 변혁의 대표 화가로 꼽는 배경이다. 미술평론가 사오다전(邵大箴)은 "타이항 산은 그의 마음속에서 우주의 삼라만상과 민족, 자신의 정신이 하나로 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에 투영되어 흐르고 있다"고 평했다. 34점 전시작품을 둘러보면 자유푸가 그림에서 강조하는'의기의 두터움'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두터움'은 정신의 풍부함을 말한다. 전시와 함께 나온 책 '시인가 노래인가-고독한 수행자 자유푸 교수의 그림 이야기'(도서출판 학고재 펴냄)는 묵직한 작가용 교과서이자 동양화 감상 길라잡이다. 전시는 28일까지. 02-720-152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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