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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힘 … 미국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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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에서 한류(韓流)의 인기는 드높다. 대장금의 이영애,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김희선, 해적판으로 널리 보급된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류 스타와 작품이 대륙을 덮고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와 영화로 대변되는 문명적 요소는 본래 서구 것이다. 30년 동안 문을 닫았다가 1970년대 말 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중국에 할리우드의 요란하고 야한 액션은 한입에 덥석 받아 물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구 문화에 한반도에서 생성된 맛과 멋을 가미한 게 한류다. 그래서 한류의 문명적 성분은 짭짤한 해양문화에 더 가깝고, 할리우드에 비해 훨씬 맛깔스러운 감정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당국의 규정에 따라 늦은 밤에만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베이징의 한 대학교 직원은 한꺼번에 대장금을 몽땅 보다가 다음날 결근하기도 했다.

한류는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그 속에 우리의 체험과 정감을 섞어 만든 물건이다. 나이키와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의 본류 속에서도 한류는 살아 숨 쉰다. 미국식 정신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 속에 한반도적 특수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화적 현상은 국제 정치 판도 속에서도 그대로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고민이 있다. '대국'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하는 점이다. 아예 중국에 납작 엎드리는 방법, 아니면 맞장 뜨는 법…. 둘 다 어렵다. 엎드리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고 드잡이를 하기엔 중국이 너무 크다.

답은 한류의 '약발'이다. 쉽게 말하자면 중국을 움직이는 변수, 미국을 등에 업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나라지만 북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국의 시선은 정작 늘 미국에 맞춰져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중국 무시도 알고 보면 미국의 금융제재를 중국이 막아 주지 못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수퍼 파워'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자국 영토인 마카오에서 북한 자금 동결에 나선 것을 북한은 끝내 미덥지 못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 사전 통보 없는 미사일 발사로 나타났다.

더 깊이 보더라도 중국이 북한 카드를 활용하는 궁극적 목적은 주변 국가의 안정과 대만 문제에 있다. 북한을 아우르면서 미국의 세(勢)가 중국 영토에 직접 다가오는 것을 막고 대만과의 통일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여 보자는 게 중국의 목적이다.

북한은 안 그럴까. 북한 미사일의 가장 큰 의도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 있다. 미국이 북한의 지도부를 늘 고민과 주저, 부러움과 수치심으로 내몰고 가는 가장 큰 요인이다. 미국과 맞서는 모양새를 통해 북한 지도부는 북한 주민을 내부 통치의 틀로 이끌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미국이다. 그 힘이 도도하게 흐르는 체스판 속에 한반도의 전략은 명맥을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등에 업는다"라는 말이 비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게 국제적 힘의 균형을 감안한 한.미 동맹이다. 문명적 현상까지 말하고 나설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요즘 한국에서 늘 들리는 한.미동맹의 균열 조짐이 걱정스러워 하는 소리다.

민족과 자주도 좋지만 국제 정치는 냉정한 힘의 세계다. 그래서 한.미 동맹은 더욱 중요하다. 미사일 사태에서 한국이 보여준 외교력은 문제다. 지난 6자회담에서 보여준 한국의 역할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게 베이징에서의 '감'이다. 한.미.일 3각 관계를 무시해 부른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충무로와 홍대 앞에서 한류의 힘을 배워라."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 당국자들에게 이런 충고를 건네고 싶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