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기마군단 800년 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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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을 맞아 11일 몽골 전역에서 대규모 기념행사의 막이 올랐다. 몽골 정부가 관광객 5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준비한 대대적인 '칭기즈칸 축제'다. 1600만 달러(약 150억원)의 비용을 들인 국가 차원의 행사다.

11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몽골 최대 전통 연례 행사인 나담(Naadam) 축제에는 예년의 두 배가 넘는 1000여 명의 선수가 모였다. 사상 최대 규모다. 칭기즈칸 시대에 시작된 이 전통 축제에선 전국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경마와 궁술.씨름의 세 가지 경기를 벌여 승부를 겨룬다.

13세기 몽골 기마부대 복장의 몽골 현역 군인 500여 명이 10일 칭기즈칸 기마부대의 전투를 그대로 재현하는 '칭기즈칸 800년 만의 귀환' 행사 도중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고 있다. [토브(울란바토르 교외) AP=연합뉴스]

앞서 10일에는 울란바토르 시청 앞에 설치된 칭기즈칸 대형 동상의 제막식이 열린 데 이어 오후에는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기마병 전투 장면이 재연됐다. 울란바토르 남부 대초원에 나타난 500명의 '기마 병사'는 정부 관계자와 관광객 등 3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빨랐던 13세기 몽골 기마부대의 전투 장면을 45분간 재현했다.

몽골군 현역 군인들로 구성된 기마부대는 고증을 거쳐 800년 전과 똑같은 갑옷과 무기로 무장했으며, 지난 1년간 칭기즈칸의 주력 부대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AP통신은 현장의 관람객들의 말을 인용, "활과 창검을 이용한 전투장면이 마치 실제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기마병 전투 재연은 8월 말까지 총 30차례 실시돼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 모을 예정이다.

정부는 대규모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올 들어 깨끗하고 질서있는 거리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과음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몽골 보건 당국은 최근 285명의 만성 알코올 환자들에게 단주 명령을 내렸다.

◆ "자유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기"=이 같은 정부 주도의 칭기즈칸 붐은 몽골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울란바토르 공항이 '칭기즈칸 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갓난아이 이름과 거리.학교.보드카 이름에까지 칭기즈라는 이름이 쓰이고 있다. 울란바토르가 '붉은 영웅'을 뜻하는 공산주의 시대의 잔재이므로, 수도 이름을 '칭기즈칸 시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서구화를 추진해 러시아 중흥의 기초를 마련한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미국 수도 워싱턴 등의 사례를 따르자는 것이다.

AP통신은 몽골에서의 칭기즈칸 붐에 대해 "1990년 70년간의 공산통치가 종식된 이후 도도하게 일어나고 있는 몽골 사회 변화의 핵심"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90년 민주화 이전 공산정권은 칭기즈칸을 봉건 압제자로 규정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귀족들을 참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연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600달러에 불과한 빈국으로 전락한 현실 앞에 칭기즈칸 시대에 대한 향수가 몽골 국민 사이에 고조됐다. 이는 건국 800주년을 맞는 몽골 정부의 관광산업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이 같은 대형 칭기즈칸 축제로 이어진 것이다.

AP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민주국가로 탈바꿈하는 이 나라 국가 부흥정책의 중심에 칭기즈칸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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