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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 측 “임종헌 USB 파일 8635개 중 약 7500개는 범죄 사실과 무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휴정 후 다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30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연합뉴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휴정 후 다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30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검찰이 압수한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긴 파일 상당수가 불법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제동을 하는 분위기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6일 중앙일보는 박 전 대법관 측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춘)에 최근 제출한 의견서를 입수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은 2018년 7월 압수수색에서 임 전 차장의 USB 5개를 확보했다. 박 전 대법관 측은 USB 압수수색이 영장에 적힌 것과 달리 임 전 차장의 주거지가 아니라 근무했던 법무법인 사무실에 이뤄졌고, 적시됐던 혐의와 관련된 파일이 아닌 전체를 복사(이미징)해 갔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영장에 기재된 압수 대상이나 방법의 제한을 위반한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또 압수조서에 임 전 차장 사건과 관계없는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기재돼 있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검찰이 임 전 차장 USB로부터 압수한 8635개 파일 중 7500개는 범죄 사실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압수 목록에 게재된 ‘서울회생법원개원식’과 같은 이름을 가진 파일을 사례로 들었다. 또 검찰이 임 전 차장 측에 제출한 압수목록에는 압수수색을 한 2018년 7월 21일보다 이틀 뒤인 23일이 ‘만든 날짜’로 표기된 파일도 포함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USB 압수조서에 게재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이름. 김백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인물이다. [사진 박병대 전 대법관 측 변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USB 압수조서에 게재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이름. 김백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인물이다. [사진 박병대 전 대법관 측 변호인]

 변호인 측에 따르면 검찰 8635개 중 1142개만 증거로 제출했고 재판중엔 이중 최소 150개가 넘는 증거들이 임 전 차장 USB에서 압수된 것이 아니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150개 증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며 “증거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은 당초 예상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확보한 증거가 아닌 별건으로 확보한 증거로 범죄사실을 주장한 것이라며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독수독과(毒樹毒果·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 따라 임 전 차장의 USB를 증거로 제시하고 참고인 진술조서가 작성됐다면 해당 조서의 증거 능력도 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규정과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된 독수독과 이론이 이번 재판에도 반영돼야 한다는 얘기다. 의견서에는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다른 범죄의 증거가 나온 경우 증거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서울고등법원의 2017년 판결도 인용됐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최근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 이순형)는 판결문에서 변호인 측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주장을 인정했다. 2018년 3월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압수한 서류들은 권 의원의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별건 압수라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의 USB 증거 능력 채택은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임 전 차장 측도 검찰이 USB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증거로 활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당시 검찰은 “주거지에서 사무실로 가게 된 것도 주거지 컴퓨터에서 USB 접속 흔적이 나오자 임 전 차장이 USB가 사무실에 있다고 해서 간 것”이라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USB를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은 최근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 주장에 “압수물 100개 중에 가장 핵심적인 증거 1~2개라도 나오면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수사 기법이고, 명백한 오기(誤記)는 판결문에서도 종종 나타난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보관실 운영비 불편 편성 의혹도 권성동 의원 재판에서 별건 압수로 판단한 사건에 비하면 사법행정권 남용 핵심과 깊숙이 연관돼 있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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