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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용기가 7명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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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태풍 에위니아가 남부지방을 통과한 10일 부산시 북구 만덕동 디지털도서관 뒷산에서 토사와 물이 쏟아져 내려 도로와 차량들이 부서져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레커차가 10일 남강에 빠진 시내버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강에 추락한 시내버스 운전사가 죽음의 문턱에 이른 승객들을 구해냈다. 경남 진주시 신일교통 소속 시내버스가 상대동 뒤벼리 강변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4m 아래 남강으로 추락한 것은 10일 오전 7시15분쯤. 버스 안에는 등교하던 고등학생과 장을 보러가던 할머니 등 8명이 타고 있었다.

버스가 추락할 때 정신을 잃었던 운전기사 정우기(52.진주시 봉래동)씨가 얼마 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버스 앞쪽에서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순간 정씨는 학생과 할머니부터 먼저 구하기로 했다.

정씨는 "노약자부터 먼저 구조해 놓으면 나머지 승객은 119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우선 그는 승객을 탈출시키기 위해 차 안에 있던 망치로 버스 앞과 옆의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일부 승객은 정신을 잃고 차 안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먼저 앞쪽으로 다가오자 이 남학생을 버스 밖으로 나가도록 한 뒤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백미러를 잡고 있도록 했다. 이어 정모(65.여)씨 등 세 명의 할머니를 깨진 유리창 사이로 한 명씩 빠져나오도록 한 뒤 손을 잡고 헤엄쳐 강둑까지 갔다.

구조된 할머니들은 "(기사가) '저를 꼭 잡으세요. 놓으면 죽습니다'라고 말한 뒤 우리를 잡고 헤엄쳐 나왔다"며 "정신을 잃은 승객들에게 '서둘러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며 깨웠다"고 말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진주소방서 소속 119구조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머지 승객들은 구조대원들이 보트 등을 이용해 구조했다. 그러나 정씨가 처음으로 구한 고등학생은 백미러를 잡고 있다 물살에 휩쓸려 실종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한편 경찰은 정씨를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진주=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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