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ESS 안전성 어정쩡한 결론, 해외수출길 막는 산업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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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12월 22일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태양광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 ESS )에서 화재가 발생해 119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이 화재로 18억원의 재산 피해가를 입었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22일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태양광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 ESS )에서 화재가 발생해 119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이 화재로 18억원의 재산 피해가를 입었다. [중앙포토]

“ESS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배터리셀 등 핵심부품 결함 확인 #화재 연관성엔 명확한 입장 안 내 #국내 업계 보호엔 도움 되겠지만 #세계시장에 믿음 못줘 악재 작용

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발표한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원인 조사 결과에 대한 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산업부가 화재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발표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민관합동 조사 위원회는 화재 원인으로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ESS 통합제어·보호 체계 미흡 4가지를 꼽았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ESS 화재를 포함해 23건의 화재 사건을 분석한 결론이다. 전기를 저장했다 필요할 때 빼서 쓰는 ESS의 핵심 부품은 크게 대용량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PCS), 관리 소프트웨어 3가지로 나뉜다. 이를 두고 ESS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3가지 핵심 부품 모두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딱 떨어지는 화재 원인을 찾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ESS 배터리와 관련된 화재 원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텝이 더욱 꼬였다. 산업부는 “조사 과정에서 극판 접힘이나 절단분량, 코딩 불량 등 ESS 배터리셀 결함을 발견했다”고 이날 밝혔다.

그러면서도 실험 결과 배터리셀 결함에 따른 발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정욱 산업부 제품안전정책국장은 “극판 접힘과 절단 불량을 모사한 배터리를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을 수행했으나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의 단락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제조결함이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를 가득 충전한 상태가 지속해서 유지되는 경우 내부단락으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실험 결과와 조사위원회의 결론이 모순된다.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건 조사 위원회에 참가한 전문가도 마찬가지였다. 최윤석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배터리셀 결함이 곧장 화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셀 결함은 내부 단락의 관계요인으로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간접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정쩡한 결론에 산업부의 ESS 화재 원인 조사 결과에 대한 각종 기사도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란 보도와 배터리가 직접적인 화재 원인은 아니라는 보도로 갈렸다.

그러면서도 산업부는 배터리 업계에 ESS 화재 책임을 돌렸다. 박정욱 산업부 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ESS 배터리 구성품에 문제가 있다면 (배터리) 업체에 1차 책임이 있을 것이고 배터리를 묶어 시스템화하는 부분에 미흡함이 있었다면 배터리 업체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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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저도 아닌 산업부의 어정쩡한 ESS 화재 원인 결과 발표는 업계에선 예견된 것이었다. 국내 ESS 산업 보호를 위한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 변수는 고려하지 못했다. 지난 4월 미국 애리조나주 ESS 시설에서도 국내와 비슷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진압을 담당하던 소방관 4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 시설엔 한국 기업이 만든 배터리가 쓰였다. 미국 정부는 ESS 화재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결과 배터리 문제로 결론이 날 경우 한국 ESS 시스템에 대한 신뢰 하락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선 산업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ESS 기업의 해외 진출에 득보단 실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가 많다. ESS 업계 관계자는 “ 세계적으로 국내 ESS 산업은 가장 앞섰다”며 “산업부의 어정쩡한 결론이 당장 국내 ESS 사업장 보호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 시장을 바라보는 ESS 업계엔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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