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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루블린에서 축구사 새로 쓴 ‘신세대 태극전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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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렇게 멀리 올 줄은 몰랐다. 정정용 대한민국 20세 이하(U-20)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일본에 승리한 뒤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고 다짐했을 때만 해도.

사실 거기까지만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그런데 ‘어, 어’ 하는 사이,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까지 왔다. 아르헨티나와 남아공(예선), 일본(16강), 세네갈(8강)에 이어 어제 새벽 폴란드 루블린에서 에콰도르(4강)까지 넘었다. 16일 새벽 우치에서 우크라이나만 넘어서면 한국 축구사가 아니라 FIFA(국제축구연맹)의 월드컵 축구사를 새로 쓸 수 있다.

믿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낸 ‘정정용 리더십’을 우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서두르지 않고 후반전에 승부를 거는 냉정한 전략이나 상대에 맞춰 3(수비)-5(미드필더)-2(공격), 4-2-3-1, 3-4-3시스템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정교한 전술도 돋보였지만 가장 평가할 만한 것이 ‘원팀’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정정용호의 원팀 정신은  “내가 영웅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끈끈함이었다. 그래서 천재 미드필더라는 이강인부터 어제 결승골을 넣은 최준, 난공불락의 철벽 이광연, 골게터 오세훈·조영욱, 수비수 이지솔까지 모든 선수가 서로의 플레이를 살려주고 이타적으로 희생하면서 세계를 매혹시켰다.

정 감독의 용병술도 탁월했다. 그는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벤치에 있던 선수들을 승부처에 과감하고 단호하게 투입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후반, 체력이 떨어진 에이스 이강인을 주저하지 않고 빼는 결단은 압권이었다.

이런 리더십 아래 ‘신세대 태극전사’들은 36년 전 멕시코에서 4강 신화를 쓴 ‘붉은악마’들을 극복했다. 신세대 태극전사들은 한마디로 ‘겁 없는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한 거의 모든 나라에는 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신세대 태극전사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유럽 정상급 리거들을 상대하면서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즐기듯 뛰어다녔다. 마치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제 루블린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우치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신세대 태극전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꼭 이겨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그래, 우린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가져도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꼭 한 걸음 남았다. 한번, 끝까지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