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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1514명 무작정 길거리 인터뷰 "하루 20명 거절당한 적 있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루에 20명에게 인터뷰를 거절당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 정말 ‘멘탈’이 무너지더라고요”

박기훈 ‘휴먼스 오브 서울’ 프로젝트 공동대표 #6년간 1514명의 평범한 서울시민 인터뷰 #“누구나 소중하게 품은 특별한 이야기 있어” #길거리 섭외 고집 “날 것에 대한 갈증 때문” #“1000만 서울 사람 모두 인터뷰하는 게 목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에 인터뷰 콘텐트를 유통하는 ‘휴먼스 오브 서울(Humans of Seoul)’의 박기훈(36) 대표는 길거리 시민을 '무작정 인터뷰'하는 고충을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2013년 11월부터 6년 동안 평범한 서울 사람들 1514명을 인터뷰했다. 1.44일당 한 명, 사흘에 두 명꼴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여전히 섭외가 어렵다”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박 대표와 정성균(36) 편집장이 2013년 만든 휴먼스 오브 서울은 SNS 기반으로 평범한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콘텐트다. 매주 30만여 명이 휴먼스 오브 서울에 실린 글을 읽는다. 구독자 절반이 해외 독자다.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휴먼스 오브 뉴욕’을 벤치마크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보통 ‘바쁘다’, ‘약속에 늦었다’며 사양했다. 아예 무시당하거나 ‘왜 쓸데없는 걸 물어보느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박기훈 대표는 정성균 편집장과 휴먼스 오브 서울 프로젝트를 7년 째 이끌고 있다. [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박기훈 대표는 정성균 편집장과 휴먼스 오브 서울 프로젝트를 7년 째 이끌고 있다. [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이렇게 인터뷰가 힘든데도 사람 만나기 프로젝트를 7년째 이어온 이유는 뭘까. 박 대표는 “평범한 사람도 소중하고 특별한 이야기 하나쯤 있고 그런 ‘날 것’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박 대표와 정 편집장이 시작한 휴먼스 오브 서울은 이제 기획(2명)·인터뷰어(8명)·포토그래퍼(4명)·번역(11명) 등 식구가 27명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지난달 서울기록원 개원식에서 인터뷰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요. 자녀들이 어렸을 적,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아이들이 마음 아파하는 걸 보고서 엄마 역할을 대신 해주고 싶어서 여자 옷을 입기 시작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독특한 모습이 이해됐어요.” 박대표는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야만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 유제향(왼쪽) 김종욱(오른쪽)[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 유제향(왼쪽) 김종욱(오른쪽)[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휴먼스 오브 서울에 인터뷰어로 참여하는 정두현(29)씨는 “2019 서울패션위크에서 만난 지체 장애 패션모델 지망생 김종욱(23)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씨는 패션을 통해 장애로 인한 아픔을 극복하고 있다. 정씨는 “인터뷰 요청이 혹시 실례가 아닐까 고민했지만, 밝은 얼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김군은 한국 최초의 지체 장애인 출신 모델을 꿈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군은 자신의 인터뷰에 달린 응원 글에 직접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정씨는 “젊은 시절 서울예대에 합격한 뒤 꿈을 접고 법무사로 살아오다 63세가 돼서야 늦깎이 대학 모델학과 신입생이 된 유제향(64)씨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전했다. 유씨는 하루에 스쿼드를 100개 넘게 하는 등 모델 준비에 한창이다. 가족들은 건강 생각하라지만 유씨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고 한다. 정씨는 “인터뷰 내내 한창 젊은 내가 힘을 받을 정도로 삶에 대한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길거리에서 한다. 짧으면 5분, 길면 40~50분이 걸린다. 인터뷰 때 이름·나이·직업·연락처 등을 되도록 먼저 묻지 않는다.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사진과 번역 작업 등을 거쳐 콘텐트가 완성되기까지 3주 걸린다. 인력이 늘어서 최근에는 하루에 1~3개의 인터뷰 기사를 올릴 수 있다.

스태프들이 지난 8일 박기훈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스태프들이 지난 8일 박기훈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휴먼스 오브 서울]

휴먼스 오브 서울은 돈을 벌지 않는다. 모두 무보수로 일한다. 간혹 행사에 참석해 수익이 생겨도 나누거나 공금으로 쓴다. 스태프들은 각자 직업이 따로 있다. 박 대표는 “각자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하는 게 쉽지 않다”며 “돈에서 벗어나야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무실도 따로 없다. 다 같이 모일 땐 박 대표 개인이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에 모인다. 유명인의 인터뷰 요청도 정중히 거절한다. 친구나 지인도 섭외하지 않는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생겨 인터뷰어가 그만두기도 했다.

앞으로 계획이 뭐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동료들끼리 ‘서울 사람들을 모두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요.”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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