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24)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상대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면 그 상대를 결정적인 순간에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꼭 만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이 악연을 맺지 말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을까? 아니다. 선의의 의미에서도 적용된다.
제주에서 해녀가 살던 폐가를 얻어 수리작업을 하던 어느 날, 잠시 여유를 가질 요량으로 집에서 가까운 올레길을 걷는데 으슥한 곶자왈 지역에서 올레꾼을 만났다. 그 역시 혼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한익종선생님 아니세요?” “맞는데요. 제가 한익종입니다만…” “아~ 선생님 예전에 인천에서 봉사활동 하실 때 요양원에서 뵀었잖아요”
반가웠다고 하는 게 맞을까, 전율을 느꼈다는 게 맞을까? 문득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일 인적 드문 올레길에서 단둘이 만났는데 내가 못된 일을 저질렀던 상대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물도 준비하지 않고 걸은 그 날 그분에게서 물과 간식을 얻어먹으며 온갖 덕담을 들은 기억은 내게 원수뿐만 아니라 선행을 베푼 상대편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만난다는 내 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었다.
외나무다리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런 경험은 또 있다. 눈 내린 경기도 양평 수종사를 찾으러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데 저만치 앞에서 요란한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 조용한 산사를 찾으려면 천천히 묵상하면서 걸어 오를 일이지 차는 웬일이며 더군다나 눈길에 차를 끌고 오르는 건 뭔 경우야? 짜증이 돋는 내 시야에 내리막을 향해 주차한 차가 눈길에 헛바퀴 질을 하며 갓길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냥 지나치려다가 하도 딱해서 숲으로 들어 잔가지며 낙엽을 가져와 바퀴 뒷바닥에 깔아 주고 천천히 가속 페달을 밟으라고 해 겨우 빠져나오게 했다. 그런데 수종사 방향에서 내려오던 중년 부인이 나를 알아보고 “어머~ 한 대표님 아니세요?” 알고 보니 그 중년 부인은 내가 문화탐방 안내를 맡아 봉사한 모 단체의 회원이었고 곤경에서 막 벗어난 차주의 부인이었다.
그 사연으로 인해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서울의 큰 시장 상인동호회 회원들이 내 회사를 통해 단체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두 경우 다 평소 베푼 선행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아닌가 싶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비단 부정적 의미에서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얼마 전 언론에 취업준비생으로 한 일주일간을 굶은 청년이 마트에서 절도범으로 잡혀 경찰에 입건됐고 이를 딱하게 여긴 담당 경찰이 몇만원인가를 건넨 사연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청년은 그 돈으로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살려 직장에 취직했고 첫 월급을 타 그 경찰관을 찾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리는 흔히 기부나 봉사를 얘기하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라며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진 것이 많아 베풀 수 있어 좋겠다. 나도 그 입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수십억을 기부하는 유명인사나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봉사하는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감동과 도움을 주는 것일까?
아니다. 진정 상대편에게 감동과 도움을 주는 행위는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별로 큰 양의 물질적 도움이 아니더라도 더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진 사람이 행하는 기부나 봉사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람은 워낙 가진 것이 많으니 당연한 거야’라는 인식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은 부분이라도 나눠주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더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별로 나눠 먹을 것 없는 콩알이라도 이웃과 나눠 먹겠다는 생각을 장려한 속담이다. 결국은 행위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은유한 표현이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게 더 큰 감동
사람의 삶에는 얄궂은 징크스가 여럿 있다. 그중에 우리가 자주 겪는 징크스가 머피의 법칙이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꼭 나한테만 일어나는 것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머피의 법칙은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 내가 선행을 베푼 사람과의 재회라면 좋겠지만 이상하게 꼭 내가 서운하게 대했던 사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겪은 상대와 묘한 장소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다. 그런데 이 법칙이 꼭 나쁜 인연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의미로 적용한다면 고마움을 입은 사람과도 묘한 경우에 만난다. 베풀자. 봉사하고 기부하자. 그건 양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자세를 배우자. 그것이 인생후반부, 함께 더 오래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