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反美 동맹' 잠잠해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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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사이의 전쟁이 적어도 당분간은 중단됐다. 그게 진정한 평화인지, 단순한 휴전인지는 분명치 않다. 지난주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사이에 설전이 잠잠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슈뢰더 총리에게 무척 우호적으로 나왔다. 지난 1년간 슈뢰더 총리를 만나거나 말하기를 거부해온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슈뢰더의 이름을 부르고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슈뢰더 총리는 백악관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 인물)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러시아는 용서하고, 프랑스엔 압력을 가하고, 독일은 무시하는' 정책을 썼다. 이라크 전쟁을 처음부터 반대해온 '3국 반미 동맹'에 대한 워싱턴식 대응인 셈이다.

러시아가 공개적으론 반대하지 않고, 중국이 신중한 중립을 유지하는 동안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전쟁 결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에서 분투했다.

사실 슈뢰더 총리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분노는 올해 초 안보리에서 싸움이 벌어지기 전부터 있어온 해묵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공고한 관계라고 생각해마지 않던 슈뢰더 총리로부터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여름 독일에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지 않으면 슈뢰더 총리도 총선에서 이라크 전쟁을 이슈로 만들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슈뢰더 총리는 선거과정에서 '뜨지'않자 "미국의 모험주의를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며 부시를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독일의 그멜린 전 법무부 장관이 부시를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동맹관계는 결정적으로 손상됐다. 정치적 문제가 개인적 반목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갑작스러운 변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현실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미 공화당 척 헤이글 상원의원의 짧은 발언이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 말은 아주 겸손한 표현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대내적으로는 실업 문제와 연방 재정적자가 폭발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통솔력도 위태위태하다. 이라크에선 미국 군인들이 매일 죽어나간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재건을 위해 의회에 8백70억달러를 요청했지만, 의회는 "4백20억달러는 다른 국가로부터 얻어 내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그가 보증받은 건 20억달러에 불과하다. 또 이라크 안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나라의 군인들이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의 말대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두 해 동안 기승을 부렸던 일방주의는 동맹국과 우방들을 훨씬 존중하는 새로운 현실주의에 자리를 내줬다.

유럽도 훨씬 차분해졌다. 미국이라는 거인을 멈출 수는 없는 유럽이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실패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트당이 다시 권력을 잡고 또 전쟁이 벌어지면 유럽은 안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쨌든 이라크는 뉴욕보다는 나폴리와 더 가깝다. 그래서 심지어 프랑스조차 "미국의 새 이라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더 이상 "이라크에 주권을 즉각 넘기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몇달간 '상호 비방과 따돌리기'라는 시련을 겪은 후에야 양측은 전통적 미.유럽 간 공존 방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과거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야 했던 냉전 시기만큼 절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국제 테러에 대응하거나 이번 세계무역기구(WTO) 칸쿤회의에서 나타난 것 같은 자유무역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미국이나 유럽 한쪽의 노력만으론 어렵다.

영국의 정치가 로드 파머스턴이나 프랑스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모두 "국가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단지 영원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유럽과 미국은 반면교사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이해관계는 계속 변한다. 바로 그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믿음직하고 영원한 우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윤혜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