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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에 좋다고 소문난 살구씨 식품·주사제…오히려 독(毒)"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아미그달리나' 주사제. [사진 한국소비자원]

온라인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아미그달리나' 주사제. [사진 한국소비자원]

"혹시 저처럼 수술하지 않고 (암) 치료 중이신 분이 계신다면 정보 공유했으면 해요. 저는 아미그달린(살구씨 등에 있는 배당체의 일종)과 DMSO 같이 정맥주사 병행 중입니다."

최근 네이버 '암 치료' 카페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이 글처럼 살구씨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 성분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은 "낭설에 불과하다"며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근거로 살구씨 관련 식품·주사제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불법 유통되고 있다. 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4일 발표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독일산 '살구씨' 제품. [사진 한국소비자원]

온라인 쇼핑몰에서 유통되고 있는 독일산 '살구씨' 제품. [사진 한국소비자원]

아미그달린이란 살구·복숭아 등의 핵과류 씨앗에 있는 시안배당체로 효소에 의해 독성성분인 시안화수소(HCN·청산)로 분해된다.과다 섭취할 경우 시안화수소 중독 우려가 있다. 다량 노출되면 메스꺼움·구토·간 손상·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으며, 심하면 사망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살구씨는 식품 원료 사용이 금지돼 있다. 식약처 고시(제2019-31호)에도 "살구나무, 시베리아살구, 아르메니아 살구 등은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로 규정돼 있으나 씨앗은 제외돼 살구씨는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네이버 쇼핑에서 '살구씨' 등으로 검색할 경우 12개 품목 39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섭취가 간편한 ‘통씨’가 15개(39%)로 가장 많았고 ‘캡슐’ 형태가  5개(13%), 두부·오일·젤리·통조림·즙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 중이다. 대부분 해외 직구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제품이다.

소비자원은 "실제 유통 여부 확인을 위해 각 품목당 1개 제품씩 12개 제품을 주문한 결과 모두 구매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또 "살구씨가 아닌 아미그달린이 포함된 복숭아씨·사과씨 등을 함유·가공한 식품과 치료 목적의 제품은 유통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아미그달린 주사제도 1개 제품이 암 치료 관련 온라인 카페를 통해 유통됐다. 멕시코 제품으로 '아미그달리나 B-17' 제품이다. 하지만 치료 목적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미국 FDA는 살구씨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레트릴)이 말기 암 환자의 대체 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가한 바 있지만, 1977년 임상 시험 결과 암 치료에 효과가 없음을 이유로 허가를 취소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해당 주사제를 직접 투여한다는 사례가 빈번하게 확인됐다"며 "일반인이 의약품을 직접 투여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으로 소관 부처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살구씨를 이용한 식품·주사제를 유통하는 업체에 판매 중지와 회수·폐기를 권고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질병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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