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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아이같다"…무비판적 팬덤 문화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입력

연예인의 각종 비리사건이 이어지면서 스타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 문화도 변하고 있다. 사진 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가수 승리(왼)와 불법 촬영, 집단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정준영. [중앙포토]

연예인의 각종 비리사건이 이어지면서 스타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 문화도 변하고 있다. 사진 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가수 승리(왼)와 불법 촬영, 집단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정준영. [중앙포토]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 불법 촬영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정준영과 FT아일랜드의 최종훈, 마약 혐의로 구속된 박유천 등 연예인의 각종 비리 사건이 이어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 문화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성매매 알선, 횡령 등의 혐의로 승리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기각 결정 하루 뒤 그의 팬클럽에선 "아직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자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날 인터넷에는 "승리가 승리했다"는 말이 하루종일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마약 혐의로 구속된 가수 박유천의 일본 팬클럽 74개 단체 역시 지난 4월 트위터를 통해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하는 박유천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그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스타의 범죄 인정하면 내 과거 더럽혀진 기분”

일탈 행위를 지속하는 연예인에게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박유천 갤러리에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으로 팬이 올린 글에는 "'나 자신을 내려놓기가 두려웠다'라고 한 그(박유천)의 말을 지금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를 내려놓기가 두려웠으니까요'"라는 내용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트 박유천 갤러리에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으로 팬이 올린 글의 일부 [온라인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트 박유천 갤러리에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으로 팬이 올린 글의 일부 [온라인 캡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우상으로 생각했던 스타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면 자신의 과거까지 더럽혀지는 기분을 받을 수 있다"며 "연예인 자체에 대한 믿음도 있겠지만 스스로 괜찮은 사람을 좋아했던 거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싶은 심리도 보인다"고 말했다.

지지를 보내는 연예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확증편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본인의 인생에 긴밀하게 연결된 대상이 공격당할 때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본인의 가치관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맹목적 지지와 애정 스타에게도 악영향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맹목적인 지지가 연예인의 인성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창수 고려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부모에게 막 대하는 아이나 배우자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과 비슷한 심리"라며 "'그래도 네가 날 버리겠어'라는 마음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교수는 "맹목적 지지와 애정을 받는 연예인, 정치인 등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나르시시즘은 나는 특별하고 팬은 내가 뭘 해도 지지하고 용인해준다는 믿음이 되고 윤리적 잣대가 옮겨져 일반인이 볼 때 말도 안 되는 행동까지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랑받는 만큼 의무도 다해야”

그룹 슈퍼주니어가 9집 활동 계획을 밝힌 가운데 팬클럽 E.L.F가 멤버 강인의 영구 퇴출을 요구했다. 강인은 과거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뉴스1]

그룹 슈퍼주니어가 9집 활동 계획을 밝힌 가운데 팬클럽 E.L.F가 멤버 강인의 영구 퇴출을 요구했다. 강인은 과거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뉴스1]

최근엔 스타에게 엄격한 윤리 기준을 적용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3일 그룹 슈퍼주니어가 9집 앨범 활동 계획을 발표하자 슈퍼주니어 팬덤 E.L.F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슈퍼주니어 내 강인과 성민의 영구 퇴출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강인의 활동이 재개될 경우 범죄자를 옹호하며 재기를 도와준 그룹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인은 과거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1990년대 초 팬덤 현상은 어떤 사람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로 형성이 됐지만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대중도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며 우리가 좋아해 주는 만큼 스타도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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