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엄마와 딸은 왜 만날 싸우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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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슴으로 말하는 엄마 머리로 듣는 딸

데보라 태넌 지음, 문은실 옮김
부글북스, 284쪽, 1만2000원

엄마가 말한다.

"그걸 입겠다고?"

"디저트는 꼭 먹어야겠니?"

딸은 엄마의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제발 좀 남부끄럽지 않게 옷을 입어라.'

'넌 적어도 6kg은 빼야 해.'

이렇게 대화의 '행간'을 읽는 게 여자들의 속성이다. 당연히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엔 잔뜩 날이 선다. 그런데 똑같이 '금성에서 온' 모녀가 왜 이렇게 충돌할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딸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 걸까. 특히나 외모의 빅3-머리.옷.몸무게-에 관해 서로 깎아내리기 바쁘다.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우선, 너무 가깝다. 친하지 않고서는 외모의 결점을 따질 수 없다. 게다가 서로 너무나 닮은 엄마와 딸은 상대방을 세상에 자기 대신 내보이는 사람으로 여긴다. 특히 여자는 외모로 평가받는 세상 아닌가. 그러나 딸을 자신의 투영이라 여기는 엄마의 감정은 독립된 인격이고픈 딸의 소망과 충돌을 빚는다. 엄마는 다 자란 딸의 위험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때문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지만, 실상 딸은 엄마를 여전히 거인처럼 압도적인 존재로 느끼기에 사소한 비난에도 발끈하는 것이다.

딸은 엄마를 '언제든 달려올 사람'으로 여기고, 엄마는 딸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라 생각해 서로 많은 걸 기대한다. 따라서 아버지에겐 화내지 않아도 엄마에겐 함부로 하는 딸의 모습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가족 내 '비서' 역할을 맡는 엄마, '여자에겐 많은 걸 기대하면서도 그 노력에 대해서는 별로 값을 매겨주지 않는 사회의 경향'에서도 그 원인을 발견한다.

특히 딸과 엄마는 독특한 감정적 부담을 지고 살아간다. 아들이 성공하면 아무 상관없지만, 딸자식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엄마의 행복지수가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단다. 딸보다 못했던 자신의 과거, 이미 늙어버린 현실을 인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의 판본 중 상당수에서 사악한 왕비는 계모가 아닌 친모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마와 딸은 이렇게 '사랑과 질투'의 양극단을 달린다.

저자는 엄마와 딸이 화해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바꿔보라고 충고한다. 이메일 등 신매체를 활용하고, 예민한 부분은 아예 언급하지 말고, 수다가 아닌 다른 활동을 함께하라는 것이다. 일단 이 책에서 분석해놓은 대로 엄마와 딸의 기묘한 관계와 심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충분할 듯하다. 모녀지간 외의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석하는 데도 도움이 될 내용이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저자는 베스트셀러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을 쓴 바 있다. 책을 쓰는 동안 저자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속을 긁어대던 엄마의 잔소리마저 그리워질 날이 오리라는 깨달음을 전하면서….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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